요즘의 나는 발은 디디고 선 땅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있다. 20년간 스스로 파워 J라 자신하며 살아왔는데 어쩌면 나의 진짜 본성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첫 의심의 발단은 여행에서였다. 친구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여행을 하루 앞둔 날, 짐승 같은 촉을 가진 남편이 갑자기 여행지에서의 저녁인데 뭘 먹을 거냐고 물었다. 그에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숙소에서 아무거나 시켜 먹을 거라 대답했다. 남편은 불길한 눈길로 예약한 숙소를 한 번 확인해 보자 말했고, 그의 촉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지도로 검색한 숙소는 섬의 한중간에 있었다. 타박하는듯한 그의 표정에 차를 타고 도착할 수 있으니 섬이 아니라 생각했고(자세한 후기와 지도를 보지 않았다), 일단 숙소 근처에 뭐라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다급하게 변명을 하다가 조용히 눈알을 수납했다. 떠올려보면 매사 이런 식이다. 14:00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오후 4시에 타러 갔다가 놓치거나, 가뭄에 콩 나듯 빽빽하게 여행 일정을 잡은 날엔 1~2군데를 둘러보다 경치 좋은 곳에서의 대화가 즐거워지면 그 자리에 뿌리를 내려버림으로써 하루치 일정을 대충 뭉개어버리고 만다. 어쩌다가 팔자에도 없는 가짜 J로 살게 된 것일까.
매일 저녁 다음 날의 일정을 훑는다. 한 번에 구입해서 계산할 수 있도록 동선에 맞춰 정리된 구매 품목들을 점검한다. 오전 10시 20분 수영 수업이 끝나고 나면 바로 장을 보러 가야지. 베개에 머리를 누이면서 내일 아침 식사 메뉴를 떠올린다. 눈을 뜨자마자 여기저기 스트레칭하고 식사 준비, 크고 작은 가족의 하루를 준비시키며 젖은 손을 고무장갑에 밀어 넣기 위해 말리는 동안에도 할만한 것을 찾는 효율에 미쳐버린 내가 J가 아니라고? 사춘기가 딱 이런 것일까 잠이 오지 않아 며칠을 이리저리 몸을 뒤척인다.
"혹시 수영 끝나고 뭐해요?" 같은 반 회원이 내게 물어 온다. '왜 물어보시지?' 짧게 의심을 하다 포기하고 '별일 없다' 말했다. "그럼 같이 요가 갈래요?" 하고 묻는 회원을 따라 어느새 동네 도서관의 요가 수업에 와버렸다. 속으로 '장도 봐야 하고, 집에 할 일이 많은데' 구시렁거리는 것과 다르게 요가 매트를 깔고 바닥에 앉는 기분이 산뜻하다. 한 시간가량 온몸을 찢고 늘린 후, 양 무릎을 떨면서 도서관 입구를 나섰다. 다음 날 수영장에서 만난 요가 멤버(어느새 멤버가 되어 있음)들이 넌지시 오늘도 올 거냐 물어본다. 싱긋 웃었지만 사실은 요가복을 입고 수영을 왔다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그러니 이렇게 재미난 게 생기면 앞으로 나도 좀 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욕구가 너무나 낯설어 며칠을 고민한다. 누구냐, 넌.
마감 기한, 신고 기한, 납입 일을 어겨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상기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시간대별로 울리는 알람과 함께 떠오른다. 나는 이런 사람인 걸까? 아니면 이런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걸까? 효율과 계획에 미친듯한 모양새는 어쩌면 나를 방어하기 위한 기재인 것일까. 멀리서 나를 깐깐한 사람이라 여기는 사람들과 가까이에서 나를 허점 투성이로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약간의 힌트가 주어지는 듯하다. 영악한 나는 수영장 회원님들을 상대로 허점투성이 임을 굳이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 후 생활 곳곳에서 작은 놀라움들을 마주한다. 매주 금요일 스타트 수업에서 폐급의 스타트로 모두를 웃게 하는 일이 유쾌해졌다. 요가 선생님이 "
**씨, 그렇게 말고!" 하셔도 부끄럽지 않다. 수업 후 밥 먹자는 말에 의심 없이 따라갔다가 일방적인 전도를 당해도 불쾌하지 않다(밥 얻어먹음). 약간의 시간이 지체 되거나, 실수를 지적받을 때 느꼈던 자괴감의 그늘에서 한 발짝 벗어나는 기분이 든다. 맞지 않는 신발을 벗고 맨바닥을 밟은 듯하다.
수영의 기본자세는 유선형 자세이다. 복부에 힘을 주고 두 팔을 쭉 뻗어 양 귀에 붙인 이 자세는 물의 저항을 최소화한다. 이 자세만큼은 수영을 배우던 초보 시절부터 자신 있다 여겼다. 그럴 수밖에. 저항 없는 생활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었으니 그깟 유선형 자세쯤이야, 아주 엄마 뱃속에서 유선형으로 나왔다고 우기고 싶을 정도로 쉬웠으리라. 그런데 이렇게 추구해 온 효율과 계획성으로 나를 설명할 수 없다니. 밟고 선 땅이 사실은 허상이 된 것 같았다. 살아야 하기에 발아래의 땅을 의심한다. 슬쩍 신발코로 눌러보니 생각보다 단단하지도 않다. 뱅글뱅글 돌리며 좀 더 깊이 파본다. 그렇게 삶의 기준들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효율을 배신하는 일들을 하나씩 해본다. 나쁜 장난을 치는 아이가 된 듯하다. 호기심 많은 동물처럼 빼꼼히 드러난 마음에 '이래도 되나?' 하는 자기 검열이 따른다. "미안한데, 모르겠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해본다. 다음 주부터 시작될 대바늘 뜨개 수업이 확정되었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뵐게요.'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한 번 더 혼잣말을 한다.
"진짜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