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른이 된 날들
나는 어릴 때
몸을 뉘일 집은 있었지만,
마음을 내려놓을 곳은 없었다.
부모님은 늘 바빴고,
집 안은 IMF의 바람에
하루하루 흔들렸다.
그때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았다.
“내가 울면, 이 집은 더 무거워진다.”
그래서 참는 법을 먼저 배웠다.
나보다 일곱 살 어린 남동생은
나와는 달랐다.
하고 싶은 걸 말하면
웬만하면 다 들어주는 분위기,
그 아이에게만은 부모님이
조금 더 부드러웠다.
그런 모습이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티를 낼 수도 없었다.
나는 아파도 씩씩한 척했고,
서운해도 웃어넘겼고,
무엇이든 잘해야만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따뜻한 손길이 내게 오니까.
밤이 무서울 때면
아무 말 없이 손을 꽉 쥐고 버텼다.
그때의 나는,
아이임에도 ‘아이 같아도 괜찮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바로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 대신 동생을 돌봐야 했기에
친구들처럼 밖에서 놀 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나 스스로 공부해야만 했다.
동네 어른들은
“어련히 잘도 한다”고 웃어넘겼다.
그 말은 칭찬 같았지만,
그 안에는 ‘넌 이미 어른’이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숨어 있었다.
그 말이 나를 더 외롭게 했다.
저녁이 되면
하루치의 에너지를 다 소진해
감정조차 피곤해졌다.
그저 ‘오늘도 잘 버틴 나’를
스스로 토닥이는 것만이
그날의 끝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기대라는 걸
배워본 적 없는 아이였다는 걸.
힘들 때 손 잡아주는 사람 없이
혼자 어른이 되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였다는 걸.
그래도 그때의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었다.
울고 싶어도 울지 않고,
넘어져도 혼자 일어서고,
무서워도 담담한 척했다.
그 시절 버티던 힘은
어른이 된 내게
기묘한 강인함과 깊은 상처를
선물로 남겼다.
두 딸의 엄마가 된 지금,
나는 가끔 두려워진다.
혹시 나도 그때의 엄마처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그래서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지고
어떤 문제든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또다시 채찍질하게 된다.
아직도 사람에게 기대는 게 어색하고,
감정을 털어놓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아이는 ‘강해서 버틴 아이’가 아니라,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던 아이였다는 걸.
그래서 나는 이제야
그 아이를 조심스레 꺼내어 본다.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하고
집으로 데려오는 일.
이 이야기는 바로 그 여정이며,
무너졌던 마음을 다시 세우는
작은 연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