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자리에서 울던 아이
어릴 때 나는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는
눈물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슬퍼도 참을 수 있었고,
억울해도 씩 웃어보일 수 있었다.
어른들 앞에서 눈치를 보는 법을
너무 빨리 배운 탓이었다.
대신 나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자리에서만
진짜 나로 돌아왔다.
화장실, 이불 속,
집 안의 아주 조용한 구석과 같은...
그런곳에서만 나는 울었다.
그때의 눈물은
설명할 사람도,
받아줄 사람도 없어서
늘 조용하게 떨어졌다.
나는 그걸
‘내가 괜찮아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뭐든지 잘해야 했고,
착해야했고,
집에서는 도움이 되어야 했으니까.
내가 울면 누군가 더 힘들어질 거라고
어린 나는 너무 빨리 배웠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언제부턴가
‘힘들어도 참는 게
사랑받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웃으면 칭찬을 받고,
성적이 오르면 분위기가 밝아지고,
말없이 버티면
집안에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렇게 나는
내 아픔을 들키지 않는 연습을
너무 오래, 너무 오랫동안 해버렸다.
문제는 그 연습이
어른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처받아도 괜찮은 척하고,
도움이 필요해도 말하지 않고,
힘들어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말하지 않으면
세상이 조금은 괜찮아질 것처럼.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 그 자리는
울기 위해 숨어드는 공간이 아니라
도움받지 못해
혼자 버티는 법을
학습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학습은
지금의 나에게
‘혼자 버티는 것만이 안전하다’는
오래된 믿음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서야 천천히 알겠다.
그 자리에서 울던 나는
약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너무 오랫동안
기댈 곳이 없었던 것뿐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그 아이를 조용히 불러본다.
그 말 한마디가
그때의 나에게 닿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