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어른이 된 아이. 4

기대는 법을 배우지 못한 마음

by 담빛

어린 시절 혼자 버티던 습관은
어른이 된 나의 삶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가 먼저였고,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누군가 나를 걱정하는 순간
내 마음이 더

불편함을 느껴서였다.


힘들어도 참고,
불안해도 웃고,
어떤 문제든 내가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몸에 배어버린

생존 방식이
성인이 되어도 나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아플 때조차

“조금 쉬면 나아질 거예요”라고 말했고,
감정이 흔들리는 날도
누구에게 기대기보다

조용히 혼자 정리하려 했다.


기댈 곳이 없는

어린 시절을 지나며
“기대는 법” 자체를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힘들면 말해”라고 말하면
따뜻함보다도

낯섦이 먼저 밀려왔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늘 조심스럽고,

때로는 무겁게 느껴졌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에도
그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흔들리면 가족이 무너질 것만 같아
더 강해야 한다고 믿었다.
육아도, 집안의 문제도,
시댁과의 갈등도
내가 먼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족은 지키고 있었지만
정작 내 마음은 늘 뒤로 밀려나 있었다.

남편과 함께하던 사업이 흔들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순간이 찾아왔을 때도,
나는 또 혼자 버티고 있었다.


“괜찮아, 다시 하면 돼.”
스스로에게 수백 번 말하며
막연한 용기를 흉내 냈지만
실은 누구보다 무서웠다.

다시 무너질까 봐,
다시 책임져야 할까 봐,
다시 감당해야 할까 봐.

잠들기 전 조용히 울던 밤도 있었지만
그조차 말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일은
여전히 내게 낯설다.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또 누군가의 마음을 무겁게 할까
늘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나는 강해서 버틴 게 아니라
버티는 것만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던

아이였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혼자 감당하는 법만 배운 나는
그 연습대로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
늦었지만 천천히

다른 연습을 시작해 보려 한다.


누군가에게 기대도 괜찮다는 믿음,
감정을 말해도 된다는 용기,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하고

끌어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 연습을 하며
어릴 때 울지도 못한 그 아이를
조금씩 집으로 데려오는 중이다.


오늘도 마음속에 조용히 말한다.


“괜찮아,
이제는 혼자 버티지 않아도 돼.
누구에게 기대도 되는 사람이야.”



이 이야기는
그 아이가 다시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고,
오랫동안 버텨온 나 자신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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