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숨기며 사랑을 배우던 시절
어른이 되면
어릴 때의 모든 상처가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사랑을 하면, 결혼을 하면,
누군가와 함께 살면
외로움도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도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내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는 일이 어려웠다.
아프면 괜찮다고 말했고,
답답하면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서운하면 웃으면서 넘겼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댄다는 건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감정 사용법이었다.
기댈 수 있다는 걸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결혼을 한 뒤에도
그 버릇은 이어졌다.
남편에게도,
시댁에게도,
나는 늘 “괜찮다”는 말부터 꺼냈다.
문제가 생겨도
내 탓부터 했고,
도와달라는 말은
끝내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누구에게 기대는 순간
무언가 무너질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따라다녔다.
그러다 아이 둘을 낳고
완전히 지쳐 쓰러지듯
누웠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가족 안에서도
철저히 혼자였다는 사실을.
누군가 있는 공간에
같이 살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늘 외딴섬 같았다.
이런 고독이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나는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왜냐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내 약한 면을 들키는 게
겁났기 때문이다.
어릴 때 배운 방식은
어른이 되어서도
내 삶을 조용히 지배하고 있었다.
“힘들어도 말하지 말 것.”
“참으면 다 지나간다.”
“내가 괜찮아야 모두가 평안하다.”
이런 문장들이
내 머릿속에 오래된 교훈처럼
박혀 있었고,
나는 그걸 성실히 지켜내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는 동안,
나는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감정은 말해야 흘러가고,
기대어야 회복된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잠든 깊은 밤,
불 꺼진 거실 소파에 홀로 앉아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언제쯤 누군가에게
정말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나를 아프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살렸다.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나는 사랑을 배우는 중이었고,
솔직함 역시 배워야 할
기술이라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기대는 건 약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용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