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한강에서 만난 가을
한글날, 한강으로
오늘은 한글날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문자가 있지만, 그 탄생의 날이 있는 글자는 오직 한글뿐이다. 잠시나마 한글날을 되새기며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세 시쯤,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염강나들목을 지나 한강으로 들어서니 많은 시민들이 달리고, 뛰고, 걸으며 한가위 연휴의 여운을 정리하고 있었다. 모두가 제 나름의 속도로 강물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마곡선착장, 답답함으로 멈춘 시간 속을 지나
오늘 목적지는 복잡한 동쪽 대신 서쪽 아라한강갑문. 바람은 적당히 불고, 한두 방울 가을비가 흩날렸다. 중간중간 멈춰 구경도 하고, 쉬기도 하며 자전거 천천히 발판을 밟았다.
염강나들목을 지나면 마곡선착장이 나온다. 오세훈 시장이 수상버스를 띄운다며 세운 곳이다. 오늘 처음 가봤는데, 버스 운행은 멈췄지만 안내 펼침막은 볼 수 없었다. 대신 가장 눈에 띄는 건 “CU편의점 정상영업 중”이라는 펼침막 하나. '수상버스보다 편의점이 더 중요했나’ 싶을 정도로 수상버스는 들러리고 편의점을 위한 선착장이랄까? 수상버스는 멈춰도 편의점은 24시간 돌아간다. 오세훈 시정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편의점보다 작은 선착장 개찰구는 텅 비었고, 편의점 이용자만 오가고 있었다. ‘2층 화장실 고장, 사용 금지’라는 종이 문구가 붙어 있었고, 구석구석에는 거미줄과 죽은 거미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순간 마치 시작과 동시에 멈춰버린 수상버스가 겹쳐 보였다.
방화대교, 작은 모래사장에 옛 추억
다시 자전거를 몰아 방화대교 쪽으로 향했다. 가다 보니 한 시설물이 파손되어 진입이 막혀 있었다. 많은 시민이 지나는 길인데, 엉뚱한 곳에는 세금을 쏟아붓고 이런 데는 손길이 닿지 않는다니. 정말 내년 6월 지방선거거 얼마나 중요한자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다.
방화대교 아래에는 여느 때처럼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강종합개발로 바닥을 파내 이제는 금빛 모래를 찾기 어렵지만 여기는 아이들이 어릴 적 걷던 작은 모래사장이 있는 곳이다. 돌 수제비를 하며 물가에서 장난치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오늘도 다른 아이들이 아버지 손을 잡고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풍경은 여전했다.
아라한강갑문에서, 다시 집으로
계속 발판을 밟아 아라한강갑문에 닿았다. 갑문 작은 다리에 불이 켜지고, 멀리서 보트가 천천히 지나갔다. 작년 이맘때,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이곳까지 왔었다. 이번 명절에 함께 오기로 계획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 생각이 마음 한켠을 스쳤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 집으로 향했다. 한강을 빠져나오며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마트에 들러 연어초밥, 키위, 햇알밤, 그리고 느린마을막걸리와 옛날막걸리를 한 병씩 샀다.
자전거에는 온갖 봉지가 대롱대롱 매달렸다. 뒤에는 초밥과 키위, 오른쪽 손잡이엔 막걸리 한 병, 음료 거치대에 또 한 병, 왼손에는 햇알밤 봉지. 내가 봐도 꽤 우스운 모양새다. 예전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그러셨는데, 이젠 내가 그 모습이다. 차라리 쓰레기봉투를 하나 사서 한꺼번에 넣어 올 걸 그랬다.
그래도 좋았다
시원한 가을 한강을 달리고, 바람을 맞은 이 시간만큼은 몸과 마음이 참 맑아졌다. 지나치는 사람들 얼굴에서 잠시의 평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은 한글날. 우리말처럼, 오늘 바람도 곱고 부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