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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하루가 궁금하다면(주민센터)

by 흐르는 강물처럼

최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오전 9시까지 사무실에 도착하도록 출근시간이 변경되었다. 더 이상 '10분 전에 도착하여 준비'하는 모습은 볼 수 없다. 나는 이게 바람직하다고 생각을 한다. 덕분에 좀 더 여유로운 아침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고, 몇 분이라도 더 잘 수 있어서 맑은 정신으로 일할 수 있으니 업무 효율성도 높아졌다.


이렇게 9시에 출근을 해서, 부서 사람들과 간단한 목례를 하고 컴퓨터를 켠다. 어제 미뤘던 일, 오늘 할 일을 수첩에 적어놓고 일을 시작한다. 정각 9시를 알리는 '띵~동'소리와 함께 행정민원대에서는 '번호표 뽑고 순서대로 오세요'라는 소리가 나오면서 동주민센터의 하루가 시작된다.


복지창구는 번호표가 없다. 따라서 민원인들은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가 적혀있는 창구에 가서 일을 보게 된다. 복지 도우미가 하는 일은 창구를 찾지 못하는 민원인에게 다가가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어보고 해당 창구로 친절하게 안내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중 가장 바쁜 날은 월요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말 동안 동주민센터가 업무를 안 하기에 월요일이 가장 바쁜 것은 당연하다. 월요일에 민원인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서 한 주의 분위기를 알아볼 수 있다. '민원인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가령 월요일에 민원인이 많다면, 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요일은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확률이 높다.


월요일이 이상하리 만큼 고요하고 차분하다고 좋아할 필요는 없다. 분명히 나머지 요일에는 엄청 많은 민원인들로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주민센터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겠지만 , 적어도 내가 일해본 2곳의 주민센터는 '민원인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적용되었다.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고, 시계를 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있다. 1시간 반만 있으면 그토록 기다리는 점심시간이다. 우리 주민센터 복지팀은 1차, 2차로 나뉘어 밥을 먹는다. 1차는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2차는 12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이다. 1차, 2차 멤버를 정하는 기준은 딱히 없지만 대직자와 상의해서 순번을 정하고, 1차 또는 2차로 정해진 사람끼리 점심을 먹는다.


점심메뉴는 그때마다 다르다. 비 오는 날 칼국수가 생각나면 칼국수집을 가고, 전날에 술을 많이 마셔 해장을 해야 한다면 중국집을 간다. 김밥, 떡볶이, 주먹밥 등 분식이 당기면 분식집으로 향한다. 점심시간은 1시간이며, 1시간 동안 업무얘기와 민원인들 얘기를 하기도 하고, 소소한 개인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밥을 먹고 시계를 보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점심시간 후 업무를 보려고 하니 식곤증이 몰려온다. 연신 하품을 하며 민원인을 응대하려니 미안하기도 하다. 쉴 새 없이 걸려온 전화를 받고, 여유가 있으면 전체 전화도 친절하게 받아서 해당 담당자에게 연결해 준다. 새로운 공문이 내려왔는지를 살펴보고 전체 메일이 왔는지, 혹은 해결된 업무 중 실수한 부분은 없는지 끊임없이 검토하며 일과 시간을 보낸다. 정신없이 일처리를 하다 보니 어느덧 시계는 3시를 가리키고 있다.


3시라. 개인적으로 3시가 가장 업무효율이 높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식곤증은 탈피했고 퇴근시간인 6시가 앞으로 3시간밖에는 안 남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잠겨 있는 목소리도 3시쯤부터는 완전히 풀려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응대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름 '나 일 좀 하는데?'라는 나르시시즘을 느끼면서 업무에 몰두를 할 수 있다. 어쩌다 아주 가끔이지만 일처리를 다하고 나서 옆에 있는 직원과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벌써 시계는 5시를 가리키고 있다.


5시부터는 정말 시간이 느리게 간다. 일이 많거나 민원 응대가 끊임없이 올 때는 시계볼 여유도 없으나 민원이 없는 날에는 온 세상이 거북이가 된 거처럼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5시다. 특히 금요일 오후 5시는 정말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흐르지 않던 시간도 천천히 흘러 시계는 6시를 가리킨다. 은근히 기다리던 퇴근시간이다. 6시가 되면 칼퇴하는 직원들은 인사를 하고 퇴근하고, 야근할 직원은 밥을 먹고 오고, 보안근무(청사보안으로 출입문 등 관리하는 것) 직원은 민원인이 청사밖으로 다 나갔는지 점검하기 시작한다. 보안 당번은 한 달에 한번 하기 때문에 나는 오늘 칼퇴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할 일을 다 했는지 마지막 점검을 하는데 마음은 벌써 주민센터 바깥을 향하고 있다.


이렇게 하루가 또 지나갔다. 진상 민원인 때문에 괴롭기도 하고, 신규사업 공문이 내려와 이곳저곳 알아보느라 바빴으며, 실수한 업무를 수정하느라 땀 흘렸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몰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참는 적도 많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라 신기하거나 놀랍지도 않다. 나는 '오늘도 수고했어'라고 셀프 칭찬을 하며 퇴근길에 편승한다.


퇴근길에 부는 바람은 왜 그렇게 신선할까. 석양이 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지하철로 걸어간다. 집으로 향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지하철로 모여든다. 이름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직장인이라는 묘한 동질감이 느껴져 모두가 다 아는 사람처럼 반갑다.




오늘하루를 회상하며 내일을 준비하고, 오늘 업무에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내일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자기반성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를 짓는다.




지나지 않을 것만 같은 오늘 하루가 지나갔다




오늘도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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