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딸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 감정의 실타래를 거슬러 올라가다
딸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식탁에 앉아 젓가락만 만지작거리고,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속으로는 온갖 말을 삼켰다. 그렇게 물으면 상처가 될까 봐, 그냥 그릇 뚜껑을 닫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예전의 나도 그랬다는 걸.
엄마 앞에서 조용히 젓가락만 들고 있었고,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아 다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정작 나도, 내 감정을 말해본 적 없었다. 늘 괜찮은 척, 잘 사는 척, 착한 딸로만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내 딸이 내 앞에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인생이 멈춘 것 같다”
최근 5년간, 20대 여성 우울증 환자 수는 110% 넘게 증가했다. 많은 사람은 이를 “취업난”이나 “사회적 불안정”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이면엔 감정을 말하지 못한 채 살아온 우리 세대 엄마들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엄마가 힘들어 보여서, 나는 울 수 없었다.”
많은 딸이 이런 마음으로 자랐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자신의 아픔을 뒤로 미룬 채,
엄마를 먼저 위로하던 딸들. 그 감정의 억눌림이, 지금 딸들의 무기력과 우울로 돌아오고 있다. 한국의 모녀 관계는 유난히 정서적으로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억제’하는 방식으로 혹은 유지되었다. 눈빛만으로 알아채야 사랑이라 믿었고, 말로 꺼내는 감정은 불편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삼켰고, 딸은 엄마의 감정을 대신 소화했다.
『딸의 해방일지』는 그 감정의 대물림을 멈추기 위한 분리의 기록이다. 엄마이자 딸인 한 여자가 자신의 감정 구조를 들여다보며 얽힌 감정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가는 여정이다. 이 책은,
딸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문제에서 시작된 회복의 이야기다. 그리고 감정을 삼키는 대신
말하고, 느끼고, 흘려보내기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제는 안다.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엄마 곁에선, 딸도 자기 감정을 지킬 수 없다는 걸. 그 깨달음에서 시작된 ‘해방’의 기록. 이 책은 그 첫 장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엄마와 딸, 두 마음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첫 장면은 내가 엄마에게 처음으로 진짜 마음을 꺼냈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