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삼킨 딸들
나의 시점
“너 언제까지 이럴 거야? 취업 안 하면 집에서 쫓아낼 거야!” 남편의 목소리가 거실을 날카롭게 갈랐다. 딸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나는 문 앞에서 몇 번 서성거렸다. 노크라도 하고 싶었지만, 괜히 더 상처만 줄 것 같아 아무 말 못 했다.
“당신은 왜 한마디도 안 해?” 남편이 묻는다. “지금 뭐라 하면 더 상처만 줄 것 같아.” 내 목소리는 한없이 작아졌다.
딸 시점
젓가락을 내려놓는 순간, 아빠의 목소리가 벽을 때렸다. “집에서 쫓아낼 거야”라는 말에 가슴이 턱 막혔다. 엄마가 문 앞에서 서성이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오히려 더 죄책감을 부추겼다.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구나.’ 내 방 안 공기는 더 무거워졌다. 문을 세게 닫은 건, 나도 모르게 쏟아진 미안함 때문이었다.
나의 시점 (과거)
스무 살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도 집안 공기는 늘 팽팽했다. 아빠는 소리쳤고,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지쳐 있었다.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하나?’ 그 생각이 나를 점점 작게 만들었다. 지금 내 딸도 그때의 나처럼 나를 달래려고 눈치를 보고 있다. ‘아뿔싸! 나도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되어버렸다.’ 이 삼각형을 끊는 건 표정 연기가 아니라 감정의 경계를 세우는 일이다. ‘이건 내 감정, 그건 딸의 감정’이라고 선을 긋는 연습.
언젠가 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엄마가 네 편이야. 네가 뭘 선택하든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