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감정
남편 이야기를 하려면, 그의 아버지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시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말을 아낀 게 아니라 말이 사라진 사람이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 식탁에 앉았을 때, 시아버지는 밥 한 끼 하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면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고, 문틈으로 TV 소리만 흘러나왔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아버님 어디 불편하시대?” 남편은 담담히 말했다. “원래 저래. 우리 아버지 말수 적어.” 그땐 몰랐다. 그 ‘원래 저래’ 안에 얼마나 많은 세월이 묻혀 있었는지를.
남편이 중학생이던 어느 날, 속상한 일이 있어 아버지에게 털어놨다고 했다. 그러자 돌아온 말. “남자가 왜 그런 걸 말하냐.” 그 한 문장이 남편의 입을 닫아버렸다. 그날 이후 그는 집에서 자기 마음을 말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직장에서도 그 방식으로 버텼다. 버티는 법은 배웠지만, 말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결혼 후에도 그 습관은 이어졌다. 퇴근한 남편은 동굴로 들어가듯 TV 앞에 앉았다. 나는 말을 걸었다가 짧은 대답만 돌아오면 괜히 서운했다.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나랑 살기 싫어?” 남편은 그저 리모컨을 눌렀다. 그 리모컨이 우리 사이의 방음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 취직했다. 석 달쯤 지나, 아들의 얼굴이 반쪽이 되어 돌아왔다. “아빠, 이 회사 어떻게 25년이나 다녔어?” 그 말에 남편이 멈췄다. 아들의 표정 속에 젊은 날의 자신이 겹쳐 보였던 걸까. 그날 밤, 남편이 처음으로 말했다. “그땐… 너무 힘들어서 말할 힘도 없었어.”
짧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말 하나로 내 오랜 억울함이 조금은 녹아내렸다. 참 늦게 온 말이었지만, 그 말 속엔 인내의 시간이 들어 있었다. 아들도, 남편도, 시아버지도 모두 말이 없었다. 그건 유전이 아니라, 배운 습관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남자들의 생존법. 힘들어도 말하지 말 것, 감정을 드러내지 말 것, 동굴 안에서 조용히 버틸 것.
나는 더 이상 남편의 감정값을 대신 치르지 않았다. 나는 남편의 동굴에 들어가 억지로 끌어내려 하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그러자 남편이 스스로 동굴 밖으로 나왔다. 처음엔 서툴렀다. “오늘 회사에서 좀… 힘들었어.” 그 짧은 한 줄을 꺼내는 데 몇 달이 걸렸다. 하지만 그날, 우리 집 거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남편은 이제 아들에게 말한다. “버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 말은 사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시아버지에게도, 아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남자들의 동굴, 그 긴 계보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감정의 고리를 끊는 일은 상대를 바꾸는 게 아니라 먼저 나를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남편이 동굴에서 나온 그날, 나도 내 안의 오래된 방에서 한 발 나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