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감정
겨울엔 눈만 내리면 아버지는 새벽같이 일어나셨다. 우리 집 대문 앞부터 시작해 옆집, 뒷집, 골목 끝까지 눈을 치우셨다. 돌아올 땐 온몸에 땀이 흥건했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핀잔을 주셨다. “그렇게 부지런할 시간 있으면 집안일이나 좀 도와주시지.” 아버지는 그저 웃었다. 그게 내 아버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하고,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동네 어른들이 칭찬하던 사람.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시골 사람처럼, 순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단, 술만 안 드시면.
술만 드시면 사람이 달라졌다. 우리 가족만 아는, 아버지의 또 다른 얼굴. 그놈의 술이 문제였다. “아버지, 술 좀 그만 드시지….” 어릴 땐 그렇게 말했지만, 나중엔 그저 무서웠다. 가족 누구도 그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아버지가 술 취한 날엔,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그게 내 유년이었다.
나는 몰랐다. 술을 끊지 못하는 게 단순히 ‘의지 문제’인 줄 알았다. 끊으라고 말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 수업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마약은 감옥에 가야 끝나고, 술은 입원해야 끝나고, 도박은 죽어야 끝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멎었다. 아버지는 ‘문제’가 아니라 ‘환자’였구나. 중독은 병이었다. 혼자 힘으로는 끊을 수 없는 병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치료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병든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으로만 대했다는 걸. 실습 중에 A.A 모임(익명의 알코올중독자 모임)에 간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곳엔 젊은 여성들도 많았다. 평범한 얼굴들. 겉으론 멀쩡한 사람들. 그때 알았다. 중독은 얼굴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는 걸. 나이도, 직업도, 겉모습도 상관없는 문제라는 걸.
그제야, 아버지의 고통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사나운 개’가 아니었다. 그저, 아팠던 한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다정했고, 누구보다 외로웠던 사람. 나는 이제야 그 감정의 자리를 찾는다. 분노도, 두려움도, 안타까움도 모두 내 안에 함께 있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제, 조금은 놓아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부르시던 노래가 있다. “나그네 설움.” 어릴 땐 그저 술김에 부르는 흥겨운 노래인 줄 알았다. 얼마 전, 그 가사를 다시 읽었다. 아… 이건 아버지의 이야기였구나. 열 살에 부모를 모두 잃고, 머슴 살던 어린 시절. 서울로 올라와 이방인처럼 살았던 청춘. 그 모든 설움이 그 노래 안에 있었다.
나는 너무 늦게야 알았다. 그때 아버지는 그 노래로 자기 인생을 말하고 있었다는 걸. “아빠, 하늘나라에도 술이 있나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번엔, 그 술이 아버지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기를 그곳에서는, 조금 덜 외로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