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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다고 말하는 남자

남자들의 감정

by 은혜


내 동생은 십 년 넘게 방 안에 머물렀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세상과 문을 닫은 채 살았다.그는 94학번으로 IMF직후 대학을 졸업했다. 취업 대란의 한가운데였다. ‘이태백’, 이십 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이 그 시절을 상징했다. 몇 번의 취업 실패, 그리고 점점 좁아지는 기회의 문. 결국, 세상과 단절되었다.


처음엔 집 안에만 있었고, 나중엔 방 안에서도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전부였다. 그게 그의 하루였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견디지 못했다. 방에 들어가 컴퓨터를 집어던지고, 모니터를 부쉈다. “백수가 아니라 폐인이야.” 분노와 절망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런 날에도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장 난 컴퓨터를 다시 고쳤다. 부품을 사 와서, 하나씩 조립했다. 그게 세상과 이어진 유일한 통로였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고치고, 또 고치다 보니 어느새 그는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대학 동기의 소개로 작은 컴퓨터 수리 회사에 취직했다.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그땐 돈보다 ‘출근’이라는 단어가 더 컸다. 지금도 그는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말은 여전히 적지만, 표정은 예전보다 훨씬 부드럽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를 바꾸려 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누군가의 곁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의 밥을 챙겼다. 밥통에는 늘 따뜻한 밥, 냉장고에는 좋아하는 반찬. 그렇게 매일을 이어갔다. 나는 친정에 갈 때마다 동생이 좋아할 만한 간식을 사 들고 갔다. 하지만 돈은 건네지 않았다. 혹여 자존심이 다칠까 봐.


그 오랜 세월, 우리는 말을 아꼈다. 대신, 그 방 앞을 조용히 지나갔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동생은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느 날, 조용히 말했다. “그때…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의 침묵이 한꺼번에 울렸다. 가끔은 말보다 오래 남는 마음이 있다. 그 시절, 우리는 정신 차리라 소리치지도, 힘내라 소리 치지도 않았다. 대신, 아무도 동생 곁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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