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게 잘못인가요

100일 글쓰기(곰사람 프로젝트)-12일 차

by 은혜

무기력, 그 분이 오셨다


당신은 마치

나에게 받을 빚이라도

있는 것처럼

잊지도 않고 때마다

찾아오시는군요


미운 정도 정이라고

가끔 당신이 생각날 때도

있었어요


당신이 한번 오실 때마다

한 몸이 되어 침대 위에서

뒹굴었던 그 아찔한 기억들

가끔은 눈치 없이

친구도 함께 데려오시더군요

(무기력의 단짝 친구 우울)


나 요즘 잘 나가는 거 알죠

자꾸 내 발목을 붙들면

진짜 곤란합니다.


무기력 당신!

내 말 꼭 명심해요


*무기력이 찾아올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잘 견딘다.(‘언제까지 이렇게 살래’ 등 자신을 비난하지 않기)

무기력아 네가 왔구나, 잠깐만 머물다 나가줄래”




*몸에 배인 학습된 무기력


“선생님 안에는 선생님을 잡아끌어내리는 무언가가 있어요” 대학원 심리검사 수업시간이었다. 나의 심리검사 결과를 과제로 제출했을 때, 교수님이 내게 해주신 피드백이다.


‘내 안에서 나를 잡아끌어 내리고 있는 게 뭘까’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마 후, 유학 중인 20대 남학생을 내담자로 만나게 되었다. KFD(동적 가족화) 검사에서 그림 한 장으로 가족의 모습을 묘사했는데, 엄마와 누나를 모두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으로 그려놓았다.


다리를 생략해서 그린 것은 무기력을 암시하는 듯했다. ‘데자뷔! 이 익숙함은 뭘까’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내담자와 비슷한 또래인 아들도 KFD(동적 가족화) 검사를 했다면, 내 모습을 이렇게 그렸을 것 같았다.


교수님의 피드백이 제야 와닿았다. ‘너무 몸에 배어서, 내가 무기력한 사람인지도 모르고 살아왔구나’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면서 학습된 무기력이 있음을 오십이 다 돼서야 깨달았다.


우울이 습관이 될 수 있다는 말처럼, 무기력도 습관이 될 수 있겠다.






*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작은 성공(자기 효능감)을 꾸준히 경험한다.


<청계산에 오르는 일로 나의 하루를 대부분 시작한다. 그 처음은 코로나 시기부터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단 청계산에 오를 준비를 분주히 한다.


어떤 날은 꾀가 나서 가기 싫을 때도 많다. 마지못해 집을 나설 때도 있지만 다녀온 후 그 개운함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거의 매일 찍고 오는 청계산 이정표를 붙들고 " 잘했어, 훌륭해, 대단해, 내일 또 오는 거야"라며 나 스스로를 격려하고 인정하며 다독인다.


나는 이렇게 작은 '자기 효능감'을 거의 매일 아침마다 느낀다. 이런 작은 것이 쌓이고 쌓여 큰 자산이 될 것이라 믿으며!


이젠 제법 몸에 배어서 청계산에 못 간 날은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청계산아 고맙다! 네 덕에 코로나 시기도 잘 견디고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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