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곰사람 프로젝트)-22일 차
내 남동생은 10여 년의 은둔형 외톨이 상태를 거쳐 마흔 살 즈음, 기적적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남동생은 94학번으로 IMF 경제 불황 이후 졸업을 했다. 그때도 극심한 취업난등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흉흉했다. 그 당시에 이태백(이십 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걸로 기억한다.
요즘 청년 실업과 은둔(고립) 청년 문제가 사회적으로 점점 커지고 있다. 뉴스에서는 은둔형 외톨이 청년을 50만 정도로 추산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수도 있단다. 이유는 은둔 청년의 가족도 은둔 가족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정서상 자식 문제는 다들 쉬쉬하기 때문이란다.
남동생은 4년제 대학을 졸업 후, 여러 군데 취업 이력서를 제출했다. 계속된 탈락의 경험 후,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 점점 신입 사원 지원 나이 제한에도 걸리면서 아예 집안에 들어앉은 것이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컴퓨터와 무엇을 하는지, 집안에서 조차 고립되었다.
그 기간이 10년까지 가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남동생은 세상과 단절한 체, 점점 폐인 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우리 가족은 남동생의 10여 년 은둔생활을 지켜보며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짠한 마음이 더욱 컸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학 동창 소개로 컴퓨터 수리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문과생 남동생은 어떻게 컴퓨터 수리기사가 되었을까? 그 사연이 기가 막히다.
아버지는 오랜 기간 백수로 지내는 아들꼴을 참지 못했다. 남동생의 방에 들어가 원수 같은 컴퓨터를 몇 번씩이나 집어던졌다.
일용직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아들을 4년제 대학까지 공부시키면 대단한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집어던져서 고장 난 컴퓨터를 남동생은 어떻게든 고쳐냈다. 백수가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으니 스스로 고쳐내는 방법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과 유일한 통로이자, 친구인데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고쳤을까?
그렇게 10여 년을 스스로 고쳐내더니 컴퓨터 수리 전문가가 돼버린 것이다. 덕분에 10여 년의 은둔형 외톨이 백수 생활을 청산할 수 있게 되었다.
남동생은 지금까지도 컴퓨터 수리 직장을 잘 다닌다. 월급은 많지 않은데, 스스로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지 속은 얼마나 더 답답할까”
엄마는 10여 년 동안 돈 못 버는 아들을 위해 밥통에는 따뜻한 밥과 냉장고 안에는 반찬을 가득 채워 넣으 셨다. 그리고 일을 나가셨다.
"사다 줄 거 있음 말해"
나도 한 번씩 친정에 갈 때마다 남동생이 좋아하는 먹거리들이나,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주었다. 혹시라도 의존하는 마음이 들까 봐 직접적인 경제적 지원은 되도록 하지 않았다.
은둔형 외톨이 백수 청년들에게 정서적 단절을 하지 않고, 그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뎌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언젠간 자기 자리를 꼭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은둔형 외톨이라면 깊은 웅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도와주세요"라고 외쳐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