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스케치

100일 글쓰기(곰사람 프로젝트)-27일 차

by 은혜

"이번 설부터 차례 안 지내고 그냥 우리끼리 먹을 음식만 간단히 준비할 거야. 설 전날 와서 니들끼리 동그랑땡만 좀 부치고, 사라다만 좀 버무려라"


엄마는 명절 며칠 전부터 선포를 하셨다, 그러나 우리 삼 남매는 엄마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이번 설엔 정말 음식을 간단하게 하실까? 우리 엄마가 그럴 리가 없지"


설 전날 우리 삼 남매는 엄마 집에 모두 모였다. 20평 남짓한 엄마집은 이미 음식들로 가득 차 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 엄마다.


"많이 안 했어. 잡채, 겉절이 조금 하고, 갈비찜이랑 돼지고기 김치찜 조금 하고, 오징어무침 조금 하고.."


엄마의 보물 단지 김치냉장고에서 주섬 주섬 음식을 계속 꺼내놓으신다.


"엄마, 뭘 이렇게 힘들게 많이 했어. 음식 많이 하시지 말라니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우리 삼 남매는 익숙한 듯 맛있는 음식들을 폭풍 흡입한다.


"니들 밥들 다 먹었으면 전 부치고, 사라다도 무쳐라. 재료는 다 손질해 놨어"


"엄마, 저 많은걸 누가 다 먹어요?


우리 삼 남매는 대용량 재료를 보고 왁자지껄 한 마디씩 한 후, 또 익숙한 듯 완성품을 다 만들어 낸다.


"니들 다 나눠서 집에 가져가라"


"엄마, 집에 가져가면 먹을 사람도 없어 조금만 줘요"


엄마와 가벼운 실랑이 끝에, 결국 각자 한 보따리씩 싸들고서야 엄마집을 빠져나온다.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익숙한 일상이다. 해마다 달라지는 건, 팔순인 엄마의 몸상태가 점점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언젠간 이런 명절 실랑이들이 사무치게 그리울 날이 오겠지.. 엄마집을 나서다, 다시 한번 엄마를 꼬옥 안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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