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꿈속에서 만난 아버지

100일 글쓰기(곰사람 프로젝트)-35일 차

by 은혜

돌아가신 아버지를 꿈속에서 5년 만에 만났다. 꿈속에서 만난 아버지는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아버지 혹시 눈이 안 보이세요? 눈이 안 보여서 어떻게 살아요" 나는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다가 잠에서 깼다.


그리고 한동안 그 안타까운 감정이 남아 마음이 불편했다. 상담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친구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꿈을 꾸곤 했다. 그럴 때마다 꿈분석 전문가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꿈분석과 꿈해몽은 서로 다른 분야다)


"나, 아버지 꿈으로 며칠째 마음이 불편해 " 그리고 꿈 내용을 얘기했다.


"꿈을 분석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때 꿈속의 내 모습에 잠깐 머물러 봐요."


그날의 꿈이 생생히 떠올랐다.


"오래전 내가 20살 때부터 살던 2층집 거실인 것 같았어. 그곳에서 아버지는 누워 계셨어. 아! 두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신 게 생각났어! 아버지는 "눈이 안 보여서 불편하다"라고 먼저 말하지 않았어. 그런데 내가 계속 '눈이 안 보여서 어떻게 사시냐고' 안타까워했어"


"아버지는 눈이 안 보여 불편하다고 얘기하지 않는데, 왜 선배는 불편하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했을까요"


"그러게.. 꿈속에서 나는, 아버지 눈이 보이지 않아서 어떡하냐며 왜 그렇게 안타까워했을까"




최근 한 달 동안 브런치 스토리 글을 쓰기 시작하며, 아버지의 살아온 흔적들을 찾았다. 사촌오빠가 보내준 아버지 붓글씨 유품이 그 시작이었다.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해, 재능을 맘껏 펼치지 못하고, 평생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삶이 이제야 안타깝기 시작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가정 형편상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해야만 했다. 운 좋게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명문대 출신 고학력자들 속에 20살의 나는 연탄불 위에 오징어 마냥 점점 쪼그라져 갔다. 학력 차별에서 오는 열등감은 깊은 상처로 박제된 모양이다.


그 열등감 덕분에 오십 살이 넘어서까지 공부를 하게 된 것 같다.


오랜 나의 학력에 대한 불편함을 아버지에게 투사했던 걸까? 그래서 나는 꿈속의 아버지에게 눈이 보이지 않아 어떡하냐 (일종의 문맹) 며 아버지가 살다 간 삶을 안타까워했는지 모른다.



무의식에 대한 알아차림은 또 다른 변화와 성장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제야 내가 오랜 학력에 대한 열등감으로부터 자유해지기 시작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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