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애를 낳았네

100일 글쓰기(곰사람 프로젝트)- 34일 차

by 은혜

"애가 애를 낳았네"


30년 전, 24살에 결혼해서 25살에 첫 아이를 낳은 내가 많이 듣던 소리다. 모성애는 본성일까? 철이 없어도 임신을 한 사실을 알고부터 내 신경은 온통 뱃속 아이에게 있었다.


집안에서 유일한 딸인 데다, 친구 중에 결혼한 사람도 없고, 당최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었다. 친정엄마에게 물으면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지금처럼 네이*에 물어볼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육아 백과사전을 구입해서 무식할 정도로 책에 쓰여있는 정보를 맹신하는 수밖에 없었다.


24살의 임산부인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먹는 음식물이 영양분이 되어 뱃속의 아이는 조그마한 수정체에서 오장육부, 팔다리, 눈코입 사람의 모양을 갖춰가겠지. 영양분이 부족해서 제대로 못 만들면 안 되지'


마침 결혼 전부터 친정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든 계모임에서 계돈을 타게 되었다. 당시 700만 원이라는 나름의 거금이었다. '집 장만은 좀 천천히 해도 돼. 내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10개월 동안 후회 없이 먹어주리라. '


아이를 위한 투자라는 마음으로 끼니마다 좋은 음식을 찾아 2인분씩 아낌없이 먹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시기만큼 많이 먹은 기억이 없다.


결혼 전까지 "너는 애가 입이 짧아서, 밥을 그거 쬐까 먹냐"는 친정엄마의 잔소리를 많이 듣곤 했다. 만달에는 임신 전 50킬로도 안 됐던 몸무게 가 70킬로를 넘어서 혼자 신발도 제대로 못 신을 지경이 되었다


또 육아백과사전에서 태교를 위해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으면 좋다는 글을 보고 CD를 구입해 듣기 시작했다. "아가야 너 혼자라도 알아서 잘 들어라. 엄마는 잔다" 생전 잘 안 듣던 음악을 들으니 몸에서 거부반응을 보이는 걸까? 철부지 엄마는 클래식 음악만 들으면 깊은 잠이 들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8시간가량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하늘이 두 쪽으로 쫙 갈라지듯 강렬한 고통 끝에, 체중이 4킬로대에 육박하는 건장한 사내아이를 자연분만 했다.


"첫째인데도 애를 잘 낳네. 둘째를 낳을 때는 조금만 진통 있어도 빨리 병원 오세요. 안 그럼 길에서 애 낳을 수 있어요" 간호사의 조언도 들었다. (2년 후 둘째 딸아이는 첫 진통 후 4시간 만에 출산했다. 이때 간호사의 조언이 없었다면. 정말 길에서 출산을 할 뻔했다)


그러나 산모인 내 몸의 후유증은 꽤 컸다. 얼굴과 온몸이 퉁퉁 붓고 삭신이 쑤시고 아팠다. 게다가 70킬로가 넘는 살이 쉽게 빠지지 않아 산후 우울증까지 온 것이다. 산후통으로 동네 한의원을 찾았는데 몸에 습이 많은 것 같다며 한약을 지어주었다.


그 덕분인지 살은 어느 정도 빠졌지만 몸은 예전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철부지 엄마는 아직 미혼인 친구들이 한참 이쁘게 꾸미고 마음껏 놀러 다니는 모습이 너무 부럽기도 했다.


아들이 백일쯤 되었을 때 시어른들은 "즈그 애비를 닮아서 코가 오뚝하면 인물이 이뻤을 텐데 아빠를 안 탁했네" 그러시고,


친정 엄마랑 이모들은 "우리 딸을 닮아서 피부가 희었으면 인물이 이뻤을 텐데.. 엄마를 안 닮았구먼" 이러는 게 아닌가?


"에잇! 내가 다시 친정이고 시댁이고 가나 봐라" 아무리 철부지 엄마라도 자기 자식 인물 없다는데, 빈정이 확 상했다.


사실은 아들이 어렸을 때, 닥종이 인형에 많이 등장하는 촌 아이처럼 생겼었다. 친정엄마의 "아이 가졌을 때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 아이 눈이 크고 이쁘다"는 비과학적인 얘기를 그대로 믿은 내가 참 순진했다.


그래도 어린 엄마인 내 눈에는 그 촌스러움이 아이답고 사랑스럽기만 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이쁘단 말이 딱 맞다.



" 엄마가 잘 먹고 건강할 때 낳아서 그런지 확실히 내가 타고난 체력이 좋다는 걸 많이 느껴"

건장하게 성장한 사회 초년생 아들 말을 위안 삼으며,

"그래, 몸매가 망가지면 어떠냐. 자식이 체력이 좋다는데" 오늘도 애꿎은 내 뱃살을 주무른다.

최옥자 닥종이인형 작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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