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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슬퍼해도 괜찮아

100일 글쓰기(곰사람 프로젝트)-25일 차

by 은혜

설 명절을 앞두고 친정식구들과 함께 아버지가 계신 곳에 성묘를 다녀왔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납골당은 답답할 것 같다며 수목장을 원하셨다. 살아계실 때 잠시를 집에 앉아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시던 분이었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얘기다.


기가 막히게도 아버지 돌아가시기 두 달 전,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수목장이 우리 집 근처에 생겼다. 덕분에 아버지가 원하시던 대로 수목장 4번째 자리를 차지하셨다.


아버지는 당신 이름으로 된 집 한 채가 없이 전셋집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다. 생전 아무 말이 없으셔서 물욕이 없으신 분인줄 알았다. 내게버지는 그저 술 좋아하고, 화투도 좋아하는 한량처럼 보였다.


"자식들한테 집 한 채도 남겨주지 못하고 가는데..."


의사의 "식도암이신데, 여명이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정도 남으신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하신 얘기다. '그랬구나.. 아버지는 집이 없는 게 마음에 많이 남으셨구나' 그제야 아버지의 진짜 속내를 알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나서야, 40년을 편히 머물러도 되는 1평 남짓한 땅을 차지하셨다. (수목장은 연장기간까지 포함, 총 40년 사용기한 계약이 가능하다)


엄마는 2019년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작년까지 제사와 차례를 지냈는데, 올해부터는 힘에 부쳐서 안 하실 계획이란다. 나는 제사를 지내는 과정이, 엄마가 아빠를 애도하는 방식이라 생각해서 그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9제나 천도재 등도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여보, 올해부터는 제사나 차례를 안 지내요. 집으로 찾아오지 말아요. 내가 힘이 들어서 그래요. 당신이 사랑하는 막내아들도 밤에 제사 지내고 다음날 회사 가려면 힘들대요. 대신 명절 때 여기로 올게요 "


엄마는 돌아가신 아빠에게 당부하는 말을 전한다. 이젠 아버지에 대한 애도가 어느 정도 되신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너무 슬퍼하면 죽은 사람이 좋은 데로 못가"


우리나라 문화는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 기간에 가족이 돌아가신 분들은 장례식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주변 지인 분은 그 후유증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기도 한다.


나의 가족이 이 세상에서 소멸됐는데, 사는 동안 함께한 추억들을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아래의 애도문을 반복하며, 아버지와 작별하는 애도의 과정을 가졌다.






*가족 세우기 -> 애도의 작업 과정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딸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씨앗을 받고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존중해 드립니다.


아버지가 저희에게 주신

좋은 자원으로

이 세상을 잘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계신 그곳에서

다시 만나요.


그곳에서 저희를

늘 응원해 주세요.


저는 이곳에서 잘 살겠습니다.


다른 가족들의 삶도

그들이 잘 살아갈 겁니다.


저도 잘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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