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곰사람 프로젝트)-29일 차
손녀
어서 와 어서 와
곱고 고운 우리 아가.
목화송이처럼 뽀얀 볼
초롱초롱 해맑은 눈 오뚝한 코
고물고물 몸짓 하던 그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컸을까
조잘조잘 말도 잘하는
어여쁜 손녀.
나풀나풀 머리 길러 예쁜 토끼핀 꽂고
고사리 손 볼에 대고 보조개 웃음 짓는 귀여운 손녀
두 눈 찡긋 귀엽게 윙크하는 웃음꽃송이
언제나 눈앞에 아른거리는
사랑스러운 나의 손녀
사랑받고 빛이 되는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으면..
2010년 2월 14일(설날) 할머니가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던 어머님은 70세부터 초등학교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학교 과제로 손녀딸에 대한 시도 가끔 쓰셨던 모양이다.
어느 날 시댁에 갔다가 어머님의 엉성한 글씨체로 쓰인 습작들을 보고 마음이 뭉클했다. 위의 시도 어머님의 마음을 담은 습작 중 한편이다. 그 후 중, 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79세에 전문대 학사학위까지 취득하는 성실함을 보이셨다.
"난디, 느그들 낼모레 집에 오냐"
구수한 사투리의 순박한 어머님 모습뒤에 감춰진 꾸준함과 지독한 성실함은 반전 모습이다.
"우리 애들 키울 때는 먹고 사느라 이쁜지도 모르고 키웠는디, 손녀는 이렇게 이쁘다냐"
우리 부부는 IMF 위기 이후, 시댁에서 시부모님과 3년 정도 함께 산 적이 있다. 딸은 시댁에 살 때 태어나서 어머님 손에서 많이 컸다. 기른 정이 무섭다고 어머님은 유난히 손녀딸을 이뻐하셨다.
당시 함께 살던 시댁집은 작은 마당이 있는 오래된 2층 단독주택이었다. 하루는 마당에 걸어놓은 빨랫줄에 빨래를 널고 잠깐 집안에 들어갔다 나온 사이, 마당에서 놀던 딸아이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님과 나는 집안을 샅샅이 뒤져도 딸아이를 찾지 못해, 난리가 났다.
"애기가 마당에서 혼자 노는데, 이뻐서 누가 안고 가버렸나벼. 갸 못 찾으면 니하고 나는 쫓겨난다"
나는 사색이 돼서 아이를 찾다가 '에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옥상에 올라갔다. 설마 했던 옥상 한가운데 딸아이가 혼자 놀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기쁨과 안도의 눈물이 났다. 그렇게 딸아이를 찾은 후, 집안의 한바탕 소란이 끝났다. 그때 당시 4살 정도 된 딸아이가 왜 옥상까지 올라갔는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한 일이다.
"뭣한다고 객지 나가서 고생허냐. 따순 집 놔두고"
딸이 타국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을 때 어머님이 걱정하며 하신 얘기다. 90세가 다된 어머님은 지금도 스물여덟 살이나 된 손녀딸 걱정이시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웃음이 난다.
"난 쟈가 울 집 앞에 있는 대핵교 갔음 좋겄어. 집에서 편히 핵교 댕기게. 몸도 약한 아를"
하긴 대학 순위 따위와 상관없이, 손녀딸이 집에서 제일 가까운 대학교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어머님인데 오죽했을까 싶다.
한때 매운 시집살이로 어머님이 미울때도 있었지만. 어느새 세월과 함께 희석되었다. 세월 이길 장사가 없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