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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May 31. 2022

"우리 용쓴다, 진짜!"

창 내고자 창 내고자 이 내 가슴에 창 내고자

2022년 5월 31일. 한 글자도 적지 못하는 40여 일의 시간이 지났다. 자의 반 타의 반. 시련은 소문을 듣고 무리 지어 찾아오는지 쉼 없이 몰아쳤다. 친정엄마가 몸이 너무 많이 부어올라 한 달의 입원 치료 끝에 결국 투석 혹은 신장이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엄마의 완강한 반대로 신장 이식은 당분간 보류되었지만(일치 여부 검사조차 못해봤다.), 언젠가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공여자는 나다. 자녀이기에 당연하지만, 자녀가 있기에 두렵기도 하다.


엄마가 퇴원하시던 날에는 큰 아이를 다채로운 방법으로 괴롭히던 남학생이 결국 선을 넘은 장난을 가하였다. 그간의 행동을 모두 기록해왔기에 바로 문서화하여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면담을 하고, 상대 부모님께 사과를 받았다. 두 가지의 큰 줄기만으로도 마음이 허덕허덕했는데 점점 머리가 커져가는 큰 아이가 언어로, 또 행동으로 나를 줄기차게 긁어댔다. 엄마를 대하는 그 당돌함으로 그 녀석을 대하면 딱 좋을 텐데, 왜 그 태도는 내게만 향하는 것인지. 절레절레.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절감하는 날들이었다. 다행히도 내게는 믿고 의지하는 그분이 계시기에 맡기고 기도할 수 있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불안하고 예민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집 정리. 머리가 복잡할 때는 역시 노동이지!라고 되뇌며 아이들이 집을 나서면 그때부터는 주방, 거실, 화장실 등등 집안의 이곳저곳을 뒤집어 정리하고, 이를 위한 정리용품을 검색해서 구입하고, 택배가 도착하면 바로 뜯어 정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오전 내내 한번 앉지 못하고 일하며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지내다 보면 곧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과 그날그날의 일정을 함께 소화하고 나서 밤에 맥주 한잔, 혹은 와인 한잔이면 녹아내리듯 잠들 수 있었다.


엄마의 병환도, 아이의 학교생활도, 아이의 반항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집 정리는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결과물이 눈앞에 나와주어 위로가 되었다. 청소와 정리로 위로를 받는 사람이 되다니. 이런 내가 스스로 신기하기도 하고, 갸륵하기도 하다. 늘 마음을 터놓는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그녀도 나처럼 주어진 현실 안에서 어지간히 힘들었던지, 유사한 마음으로 코바늘 뜨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서로 요즘 위로받는 일을 나누다 보니 우리가 평소의 모습과 너무 안 어울리는 일을 택해 집중하고 있음을 깨닫고 빵 터져 웃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우리 용쓴다, 진짜!"


'용쓰다'

    1. (동사) 한꺼번에 기운을 몰아 쓰다.

    2. (동사) 힘을 들여 괴로움을 억지로 참다.


마흔둘의 봄을 마무리하는 가운데 용쓰고 있다. 부러 익숙하지 않은 일을 택해 기운을 몰아 쓰며, 괴로움을 억지로 참고 있다. 단톡방에서 한 친구가 요즘 고민 중인 삶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현재의 나는 그런 것을 고민할 틈이 없음을 고백했다. 숲을 볼 여력이 없다고. 내 앞의 나무들 하나하나 가꾸며 매일을 지내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며칠 전에는 '창 내고자 창 내고자 이 내 가슴에 창 내고자.'라는 시조의 구절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집을 새 단장하면서 한쪽 구석 벽에 그동안 찍은 바다 사진들을 출력하여 모아 붙였다. 오며 가며 바다를 마주하던 시원함을 환기하고 싶었다. 여름이 되면 지금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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