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매일 아침은 6시 55분에 시작된다, 목표한 시간은 7시이지만 5분이라도 더 잔다는 심리적 위안을 위해 5분 먼저 알람을 맞춰둔다. 남편이 6시 20분에 출근하기에, 종종 그때 일어나기도 하지만, 보통은 한쪽 눈만 뜨고 손을 흔들고 다시 누워 눈을 붙이곤 한다. 그때 다시 보충하지 못한 30여분의 잠은 결국은 낮에 언젠가 기절하듯 보충하게 되더라. 특히 유치원에서 돌아온 둘째에게 책을 읽어주는 오후 4시 무렵이면 나의 느슨해진 정신과 길게 늘어진 햇살이 맞물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엄마는 책만 읽으면 졸려워 한다고 생각하려나...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을 깨우기 전에 얼른 씻고, 머리를 살짝 말리고, 화장을 한다.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도 다시 화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오며 가며 만나는 엄마들을 의식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기다리면서 날이 갈수록 짙어진 기미와 잡티를 스스로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
7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아이들 방에 가서 암막 커튼을 열어 한 명씩 잠을 깨운다. 부스스하게 일어난 딸들은 책을 읽으며 간단한 먹거리를 먹는다. 두 녀석 모두 열심히 먹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그 정도로 만족한다. 아침부터 안 먹는다고 화를 내면 우리 집은 매일 아침 전쟁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내 안에는 그 '화'가 무려 9년째 목구멍까지 들어차 있다.) 잘 안 먹는 내 딸들을 보는 것이 늘 스트레스였어서 종종 인스타에 잘 먹는 아아기의 영상이 뜨면 넋을 놓고 보게 된다. 9년 동안 아이를 키우며 본 적이 없는 그런 먹성, 열정. 너무 잘 먹어도 걱정이라지만 느껴본 적이 없기에 일단은 부러운 걸로 하자.
아이들이 먹는 동안 급식을 위한 수저통과 물을 챙겨 스스로 가방에 넣을 수 있게 싱크대 끝부분에 둔다. 그리고는 아이들만큼이나 밤새 배고팠을 다른 녀석들, 우리 집 녹색 구역으로 가서 수분 측정기를 이 화분 저 화분에 꽂아본다. 고수들은, 특히 우리 엄마는 손가락 혹은 나무젓가락으로 쑥 찔러보아도 수분량을 안다던데, 나에겐 과학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측정기가 최고의 도구이다. 이거 아니었음 11개 중에 절반이라도 남아있었으려나. 내 손으로 산건 5개인데, 1년 만에 어쩌다 보니 늘어난 화분이 어느새 11개. 특히 커피나무는 자주 물을 찾는 녀석이라 매일 확인해야 한다.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고 골고루 해를 보도록 화분의 방향을 슥슥 돌리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각자 나가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출발 20분 전에 각각 씻으러 보내고 그동안 입을 옷을 코디해서 내복, 양말, 겉옷, 외투의 순서로 소파에 놓아둔다. 그리고 새로 뜯은 마스크를 아기자기한 끈에 끼워 그 옷 옆에 둔다. 그리고 씻고 나온 첫째가 하나씩 옷 입은 걸 확인하고, 머리를 묶으며 오늘의 할 일을 읊어주고, 응원을 건네준다. 첫째가 현관문을 나서면 나는 바로 들어와서 주방 베란다로 뛰어나가 동 앞으로 나온 큰 아이에게 잘 다녀오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신나게 달려가는 발걸음을 확인한다. 어쩜 초등학생은 발걸음만 봐도 초등학생 같은지 신기할 따름이다.
거실로 돌아오면 둘째가 씻고 나왔으니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시간이 되면 유치원 버스를 타러 나간다. 아이에게 급식을 재빨리 먹고 마스크를 쓸 것(늘 밥이 문제다.), 즐겁게 지내다 올 것을 전달하고 버스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면 9시 30분.
이제 내 시간이다. 내 시간이라고 해서 노는 시간이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눈에 보이는 할 일이 너무 많다. 일단 밖의 미세먼지 상태를 확인하고, 온 집의 창문을 다 열고 이슨이(우리 집 무선청소기는 그렇게 불린다.)를 들고 온 집을 돈다. 그리고 라바(물걸레 로봇을 부르는 이름이다.)를 돌려 바닥을 닦는다. 이슨이 와 라바는 둘째를 낳고, 둘을 돌보느라 너무 힘이 들었는지, 100일쯤 되니 내 입이 돌아가는 걸 보고(진짜 비뚤어져 버렸었다.) 심하게 놀란 남편이 집안일의 기계화를 이루겠다며 들여준 녀석들이다. 7년째 고장 없이 열심히 일해주는 녀석들이 든든한 나의 아군이다.
베란다에 나가 빨래를 모아 세탁기를 돌린다. 하루는 수건, 하루는 옷. 이렇게 번갈아 빨래를 돌리는데, 남편의 기계화 목표에 맞춰 함께 등장한 건조기 역시 내 절친이다. 그 녀석이 베란다에 있어서 그런지 겨울만 되면 골골대느라 정해진 시간을 훨씬 넘게 돌아서 전기를 엄청 써댄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건조기의 마력. 결혼 9년 만이던 어느 날 세탁기에서 연기가 폴폴 올라오는 바람에 수리를 하고자 했는데, 수리비보다 사는 게 낫다는 처분을 받아 세탁기를 구입해야만 했다. 가전제품 매장에 가서 보니 세탁기는 9년 전의 디자인에서 큰 변화가 없기에 쓸데없는 돈을 써야 한다며 투덜거리고 큰 제품을 구입했다. 새로운 기능이 있다면 세제를 한꺼번에 넣어두면 빨래량을 자동으로 인식해서 세제를 넣어준다나 뭐라나. 참 쓸데없다고 생각하며 구입했는데, 한두 번 사용하고 깨달았다. 손에 세제를 한 달에 한 번만 묻혀도 되는 최고의 기능이다! 만세!
주방으로 돌아와서 물통형 정수기에 수돗물을 받아 정수를 해두고, 보온이 되는 주전자에 보리차 티백을 슬쩍 걸쳐둔다. 정수된 물을 전기주전자에 끓인 후, 보리차 티백을 적실 수 있도록 조준하여 물을 붓는다. 이렇게 우려서 만든 보리차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쯤 되면 미지근한 온도가 되어 하루의 식수가 되어준다. 예전에 엄마가 해준 것처럼 보리알이 끓어오르는 물의 진동에 맞춰 주전자 바닥에서 폴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없고, 그 물을 거르는 수고도 필요 없다.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 내가 만든 물을 먹인다는 나만의 위안이랄까. 좀 더 거창한 작업은 기계화를 추구하는 우리 집의 모토에 맞지 않아.
청소와 주방정리까지 마무리하고, 커피를 내려 나의 지정석이자, 나의 작업실인 식탁 자리에 앉으면 최소 10시 30분. 너도 영어 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어플을 켜서 10분 남짓한 강의를 듣는다. 10분 들으며 웅얼거리고 오늘도 뭔가 공부를 했다고 나름의 만족감을 갖는다. 10분 들어서는 사실 발전이 불가능하다만, 그래도 나름 햇수로 3년째이니 언젠가는 늘지 않을까라며 서당개를 떠올려본다. 3년이나 이어 온건 애초에 평생회원으로 가입을 했어서 1년에 얼마간의 출석일수를 채우면 1년씩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평생 서당개도 못되는 건 아닐지 불안하긴 하다.
이제부터는 블루투스를 연결하여 음악을 틀고 커피를 내린다. 음악은 반드시 영어로. 가요를 들으면 숨어있던 감성들이 살아나서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가 최고다. 가사를 듣고 몰입해서 감정이 변하는 나를 발견하면 새삼 '아, 나 문학 전공자였지. 안 죽었네.'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항시 감정이 안정되어 있는 것이 좋아서 가요는 최대한 피한다. 내게 발라드는 금기. 요즘 내가 주로 듣는 Bruno Major, Keshi. 신나지도 늘어지지도 않는 그 정도의 음악이 오전을 보내기엔 딱 좋다. 전자책을 꺼내 들고 이것저것 읽다 보면 세탁기가 노래하며 나를 부른다. 빨래를 건조기와 건조 대용으로 분리하여 갈 곳으로 보내고 나면 12시가 되어간다.
큰 아이가 오기 전에 후다닥 점심을 해치운다. 나를 위한 상 차리기는 왜 그리 귀찮은지, 또 아까운지. (아깝다고 쓰고 귀찮다라고 읽는다.) 대강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때우거나, 라면을 끓인다. 이때 안 먹으면 아이가 하교 후 놀이터에서 놀 때, 주린 배를 부여잡고 있다가 결국 기력이 떨어져서 손 떨리는 상황이 오기에 반드시 식사를 한다. 12시 50분, 알람이 울린다. 큰 아이 픽업 시간. 이제 내 시간 끝났다. 이제부턴 두 아이의 엄마이자 매니저이자 기사가 되어 움직여야 한다. 고작 1시.
나의 하루는 생각보다 길고 다채로운데, 이것이 매일 반복된다는 것이 맹점이다. 그래서 늘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내일 같고. 매일 하는데 왜 실력은 늘지 않는지 그 역시 의문이다. 그럼에도 하루 이틀만 쉬어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정말이지 집안일의 마법이란... 투덜대며 시계를 보니 점심을 흡입할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아이가 12시 10분에 하교하는 날이라 더 바쁘다. 오늘은 뭘로 떼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