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가진 아름다움의 의미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동물은 사지가 부러지고 잘려나갈 때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그럼 반대로 식물은 통증을 못 느낄까?
스님은 살생을 하지 않는다고 고기를 먹지 않지만, 나물은 먹는다. 시금치나 콩나물은 생명이 아닌가?
다른 동물은 모르겠지만 사람은 출산할 때 엄청난 고통을 통해 출산을 한다. 식물도 그럴까?
식물은 사람이나 동물만큼은 아프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식물에게 출산이란 꽃이 지고 피는 현상속에 있을 테니까.. 만일 꽃이 질때 아프다면 한 나무에 그렇게 많은 꽃이 피지 않을 것이다. 한송이 한송이 너무 아픈데 굳이 저렇게 많은 꽃을 피울 이유는 없지 않을까?
문득 생각을 해본다. 꽃은 참 아름답지만, 일주일 이상 가는 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젊음은 빨리 진다고 하지만, 꽃은 너무 빨리 진다. 욕심 같아서는 계속 두고 보고 싶은데, 1달정도 핀 채로 우리 옆에 있어주길 바라지만 너무 빨리 진다.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꽃을 피우고, 환상처럼 떨어진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질까? 이렇게 빨리 질 걸 왜 피울까?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이유는 꽃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기 때문에 꽃이 빨리 지는 것 같다.
꽃이 져야 열매가 열리고 열매가 자라야 씨앗이 되기 때문에 식물 입장에서는 예쁜 꽃 보다는 잘자란 씨앗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식물에는 눈이 없는데 어떻게 꽃을 피우면 곤충과 동물들이 예쁘다고 달려들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식물 입장에서는 예쁜 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수단일 뿐인데 왜 이렇게 예쁘게 만들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식물이 눈이 없다는 말도 거짓말인 듯 하고 식물이 생각이 없다는 말도 거짓말인듯 하다. 사람이 낚시할 때 미끼를 사용하듯이 식물도 꽃이라는 미끼를 끼워 곤충과 동물을 불러들이고 열매라는 달콤함을 미끼로 멀리멀리 자손을 퍼뜨린다.
식물의 꽃이 지는 이유는 꽃은 그냥 미끼일 뿐, 꽃 자체가 의미와 가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미와 가치가 없는 아름다움은 그저 공허할 뿐일지 모른다.
그 공허한 아름다움이 꽃이 가진 아름다움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