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를 자르는 것은 돌이며 돌을 자르는 것은 쇠다.

상황에 따라 따라 강해지기도 약해지기도 한다. 그 상황은 시간이 결정한다

by 문종필

돌은 뚫는 물방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는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돌을 뚫는 물방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직관적이고 현실적인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필자가 철근을 자르고 싶어서 철물점에 들린적이 있다. 철물점에서 철근을 자르는 연장을 달라고 하니 철물점 주인이 그라인더와 까만색으로 된 원형 디스크를 주었다. 그래서 이 동그란 날이 뭐냐고 물어보니 숯돌이라고 했다.

아니 철근을 숯돌로 자른다고??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아마 길가다 많이 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커다란 굉음을 내면서 얇고 동그란 숯돌이 돌아갈 때 그 사이에 철근이나 쇠로된 물체를 넣으면 많은 불꽃을 만들며 철근이 잘려나가는 모습을 나도 본적이 있다. 어찌 되었던 나는 그 숯돌로 철근을 잘라내고 원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반대로 돌을 자르는 것을 쇠로 만들어진 날이다.

쇠로된 날을 물을 이용해 열을 식히며 돌을 잘라내는 모습을 굉장히 많이 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돌을 자를 때는 쇠를 쓰로 쇠를 자를 때는 돌을 쓴다니, 서로 자르고 잘린다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위 돌과 쇠의 사례는 가끔 우리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다.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환경에 따라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 입장이 바뀌기도 하고 장소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 것 같다.


과거에는 자연스러웠던 것이 지금은 범죄인 경우가 있고, 과거의 범죄가 지금은 큰 문제가 아닌 경우도 있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사회환경이건 철학이건 모든건은 상황과 필요에 의해 변하며 정해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의 피해자가 나중의 지배자가 될수도 있고 지금의 지배자가 나중의 피 지배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먹고먹히는 상황, 자르고 잘리는 상황, 가해와 피해가 생기는 상황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환경을 바꿔놓는 것 같다. 항상 영원할 것만 같았던 상황이나 고통이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듯 느껴지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행복이 시간이 지났을 때 일춘몽에 지나지 않음을 볼 수 있듯이 어떤 상황에 내가 노출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럼에 우리는 최소한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중도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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