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음과 그침[29]- 맨털에 도움되는 고전명구 6

맨털의 맛을 알고 나면 가을이 보이니라

by 나승복

라운드 중에 수시로 다가오는 정신적 압박의 ‘맛’은 어떨까?

쓰디 쓸 때, 달디 달 때, 그저 그럴 때도 있다. 그 상황을 지혜롭게 이겨냈을 때는 희열과 행복의 단맛을 띤다.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졌을 때는 자책과 실망의 쓴맛을 띤다. 달기보다는 쓰게 다가오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그 맛이 절대불변의 것은 아니다. 상당기간 쓰다 가도 최선의 연습이나 수행을 거친 후에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적 압박의 진정한 맛은 처음에 느낀 맛을 초월한 이후의 맛이리라.


정신적 압박의 ‘멋’도 생각해 볼 만하다.

정신적 압박이 다가온 때부터 결과가 발생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나 그 결과에서 보여주는 품격(品格)이라 할 수 있다. 과정이나 결과에 대하여 일희일비하거나 가볍게 반응하는 경우에는 멋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이와 달리, 초연하면서도 중후하고, 오만하지 않으면서도 분위기에 조화를 이루는 경우에는 상당한 멋의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핸디캡이 낮거나 버디를 많이 한다고 하여, 멋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핸디캡이 높거나 보기 이상을 자주 한다고 하여, 멋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신적 압박의 ‘맛’은 골퍼 자신이 내적으로 느끼는 것이고, 그 ‘멋’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맛은 라운드 결과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 멋은 라운드 과정의 표정이나 언동에 드러나는 품격이라 할 수 있다.


[동촌CC, 서코스 6번홀, 2019. 11.(필자 촬영)]


이러한 맛과 멋에 대하여, 남송시대 신기질(辛棄疾)의 추노아(醜奴兒)라는 사(詞)는 골퍼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어렸을 땐 고뇌의 맛을 몰랐네.

높이 오르는 것만 좋아하고 좋아했지.

고뇌의 글을 쓰노라면 힘이 넘쳐 댔지.


少年不識愁滋味, (소년불식수자미)

愛上層樓,愛上層樓. (애상층루, 애상층루)

為賦新詞強說愁. (위부신사강설수)


이제는 고뇌의 맛을 알게 되었네.

고뇌를 얘기할까? 에이, 관 두자.

날씨도 시원하고 멋진 가을이로구나.


而今識盡愁滋味, (이금식진수자미)

欲説還休,欲説還休. (욕설환휴, 욕설환휴)

卻道天涼好個秋. (각도천량호개추)


이 사(詞)에서 고뇌의 맛을 체득하기 전과 후가 절묘하게 대비된다. 어렸을 땐 과시나 자랑이 앞선다.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이미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것인 양 자만이 넘치는 모습이다. 그러나 힘겨운 인생 여정을 걸어온 ‘지금’에 이르러서는, 고뇌의 맛에 대하여 초연한 모습, 달관의 경지에 이른 자태가 돋보인다. 어렸을 땐 맛과 멋이 조화를 이루기 어려웠으나, 지금에 와서는 맛과 멋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굳이 얘기하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시원해서 좋은 가을로 고뇌의 의미를 아우르는 경지에 이른 듯하다.


이 사(詞)의 울림이 주는 고뇌의 맛과 멋을 골프에 적용하자면, 정신적 압박의 맛과 멋으로 발현될 수 있다. 그러면 맨털과 동작에서 일관되면서도 은은한 품격이 시나브로 드러난다. 적잖은 가르침을 주면서 상당한 부러움을 자극한다. 향기 그윽한 가을을 거닐며 라운드의 단맛과 골퍼의 참멋을 향해 가슴을 펼칠 만하다.


사회생활에서도 여러 사람을 대하다 보면 그 사람의 맛과 멋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가벼운 맛과 화려한 멋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심오한 맛과 우아한 멋을 지닌 사람은 오랫동안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신기질(辛棄疾)의 사(詞)가 삶의 맛과 멋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작자

✔ 신기질(辛棄疾) : 1140~1207, 남송 시인, 사인(詞人)

✔ 추노아(醜奴兒) : 신기질이 탄핵된 후 은거생활 때 지은 사(詞)

한자

✔ 而今識盡愁滋味,卻道天涼好個秋 – 辛棄疾(宋),醜奴兒

[이금식진수자미, 각도천량호개추 – 신기질(송), 추노아]

고뇌의 맛을 알고 나니 시원한 가을이 보이네.

✔ 識: 알 식, 盡: 다할 진, 愁: 근심 수, 滋: 자랄 자, 卻: 도리어 각, 道: 말할 도


다음 호부터는 “승리와 불패의 경기비결”에 관해 5토픽을 쓰고자 하며, 그 요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


골프게임에서 승부는 나기 마련이다.
직업과 취미에 따라 색깔이 다를 뿐이다.
자신을 이기고 흐름을 타라.
오는 기회는 놓치지 말되, 집착에서 벗어나라.
불리한 상황에서는 반전을 모색하라.
그러면, 프로는 승리의 미소를, 아마추어는 불패의 여유를 즐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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