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음과 그침[41]- 한시와 함께 하는 골프투어 2

봄날의 청산녹수

by 나승복

골퍼가 이른 아침 필드를 향해 집을 나설 땐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기대도 크다. 3개월 남짓 동면을 보낸 후라면 초봄의 양광과 신록의 향기를 대하는 순간 “바로 이것이다!”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초봄을 맞이한 산에는 푸르름이 넘치고, 그 안의 계곡에는 초록빛 물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처럼 산수화가 펼쳐진 코스에서 라운드를 하다 보면 골프가 주는 묘미를 더 깊이 즐길 수 있다. 이는 시의 정취가 무르익는 대자연을 무대 삼아 신춘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이리라.


초봄의 대자연, 그 속에 펼쳐진 시의 향기는 골퍼의 봄마실을 더욱 신나게 해준다. 임칙서(林則徐, 청)와 소식(蘇軾, 송), 백거이(白居易, 당), 그리고 여류시인 김부용(金芙蓉, 조선)의 시를 통해 신춘의 아름다움을 음미해 볼 만하다. 한두 타에 집착하는 스코어 골퍼에서 풍격(風格)이 넘치는 스토리 골퍼로 거듭 나는 모습이 멋질 것이다.


[마에스트로CC, 2017. 5.(필자 촬영)]


<가족을 만나고서> 임칙서(청)

푸르른 산은 붓을 더하지 않아도 천년 가는 그림이고,

초록빛 물은 줄이 없어도 만고불변의 거문고라오.

푸르른 산엔 나름의 색이 있어 꽃이 미소를 머금고,

초록빛 물엔 무성(無聲)의 리듬이 있어 새가 노래를 하누나.


<赴戍登程口點示家人> 林則徐(清)

青山不墨千秋畫, (청산불묵천추화) `

綠水無弦萬古琴. (녹수무현만고금)

青山有色花含笑, (청산유색화함소)

綠水無聲鳥作歌. (녹수무성조작가)


임칙서(林則徐)의 위 시구는 총 10구 중 일부로서 지기(知己)에 관한 것이나 시를 쓴 배경에 대해 소개하는 대신에 시어(詩語)의 계절적 특색에 맞추어 음미해 본다. 청산(靑山)은 인간의 손이 가지 않아도 천 년 동안 변함 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있는 한 폭의 산수화이다. 그 안에는 다채로운 색들이 자연의 부름을 받아 생명의 환희를 크게 해 주고 있다. 여기에 질 세라, 녹수(綠水)는 현이 없어도 만고불변의 청아(淸雅)한 소리를 세상에 품어 내는 거문고이다. 이는 무성(無聲)의 리듬에 맞추어 산새가 부르는 노래와 오묘한 화음을 드러내 주고 있다. 청산과 녹수가 펼쳐진 산하는 겨우내 따스한 양광(陽光)과 해맑은 신록(新綠)에 목마른 골퍼에겐 그야말로 선경(仙境)이리라.


<동편 난간에 핀 배꽃> 소식(송)

배꽃은 새하얗고 버들은 짙푸른데,

버들개지 날릴 때에 꽃들이 성 안에 만발했네.


<東欄梨花> 蘇軾(宋)

梨花淡白柳深青, (이화담백류심청)

柳絮飛時花滿城. (유서비시화만성)


소식(蘇軾)의 시구는 옅은 백색과 짙은 청색의 대비를 통하여 맹춘(孟春)의 생명력을 물씬 풍겨준다. 초봄을 맞아 배꽃이 마당의 동쪽 난간에 새하얀 자태를 드리운다. 인근의 수양버들은 무르익은 봄에 화답하여 그지 없이 짙푸르다. 버들개지가 가느다란 실처럼 무수히 하늘을 수 놓을 때, 눈처럼 새하얀 배꽃들이 성 안을 가득 채운다. 배꽃의 새하얌과 버들의 짙푸름이 오묘한 조화를 끌어낸다. 이 또한 초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한 폭의 산수화라고 할 수 있다.


[Sanyang GC, Suzhou, 중국, 2016. 3.(필자 촬영)]


<버들가지> 백거이(당)

봄바람이 불어오니 수많은 버들가지 춤을 추는데,

버들 새싹은 거위털보다 연하고 실보다 부드럽네.


<楊柳枝詞> 白居易(唐)

一樹春風千萬枝, (일수춘풍천만지)

嫩于金色軟于絲. (눈우금색연우사)


백거이(白居易)의 위 시는 봄소식의 첫 전령이 버들임을 묘사한다. 유연하기 그지 없는 버들가지가 얼마나 애타게 봄바람을 기다렸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천만 가지의 버들이 한꺼번에 환희의 봄노래를 부른다. 그것도 황금빛 거위의 털보다 부드럽고 가느다란 명주실보다 여린 자태로 신춘의 아름다움을 맞이한다. 상서로운 봄기운이 세상을 아우르는 듯하다. 한 겨울을 보내며 초동(初冬)의 햇살에 신록의 향기를 고대하던 골퍼의 심정도 엿볼 수 있다.


<매화> 김부용(조선)

엉성타 외가지에 달린 매화꽃,

바람비에 시달려 고개 숙였네.

땅 위에 지다할손 고운 그 향내,

해롱해롱 버들꽃 미칠 것이랴.


<梅花> 金芙蓉(朝鮮)

寒梅孤着可憐枝, (한매고착가련지)

陟雨癫风困委竖. (척우전풍곤위수)

縱今落地香猶在, (종금낙지향유재)

勝似楊花蕩浪姿. (승사양화탕랑자)


조선시대 영조 때 여류시인인 운초 김부용의 시는 봄을 보내고 싶지 않은 간절함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안서 김억(金億)은 빼어난 번역으로 시인의 가슴 속 울림을 한층 진솔하게 펼쳐준다. 그윽한 매화 향기는 버들꽃의 시샘 속에 봄바람을 타고 필드에 가득한 듯하다. 골퍼가 연초록 잔디 위를 걸으며 매화향기 퍼져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노라면 개울가 버들꽃이 부러워 할 만하리라.



작자

✔ 임칙서(林則徐) : 1785~1850, 청나라 말기 관료, 문인

✔ 소식(蘇軾) : 1037~1101, 북송시대의 시인, 학자, 정치가

✔ 백거이(白居易) : 772~836, 당나라 시인. 시문으로 신라에까지 알려졌다고 함.

✔ 김부용(金芙蓉) : 1812?~?, 조선 영조 때 여류시인

✔ 김억(金億) : 1896~?, 일제강점기 시인, 문학평론가

한자

● 赴戍登程口點示家人(부수등정구점시가인), 林則徐(임칙서)

✔ 墨: 먹 묵, 綠: 초록색 록, 弦: 줄 현, 琴: 거문고 금, 含: 포함할 함, 聲: 소리 성

● 東欄梨花(동란이화), 蘇軾(소식)

✔ 梨: 배 리, 淡: 옅을 담, 柳: 버들 류, 深: 짙을 심, 絮: 버들개지 서, 滿: 가득할 만

楊柳枝詞(양류지사), 白居易(백거이)

✔ 樹: 나무 수, 枝: 가지 지, 嫩: 연약할 눈, 于: 어조사 우(~보다), 軟: 부드러울 연

梅花(매화), 金芙蓉(김부용)

寒: 차거울 한, 梅: 매화 매, 孤: 외로울 고, 着: 붙을 착, 憐: 가엾을 련, 陟:오를 척, 癫: 미칠 전, 委: 버릴 위, 竖: 드리울 수, 縱: 방임할 종, 猶: 조차(아직) 유, 似: 비슷할 사, 蕩: 방탕할 탕, 浪: 큰물결 랑, 姿: 모습 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맺음과 그침[40]- 한시와 함께 하는 골프투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