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음과 그침[53]- 관계지속에 도움되는 고전지혜 4

달팽이뿔만한 필드에서 다투지 마라

by 나승복

필자가 가끔 참여하는 월례회에서 발생한 일이다. 몇 팀 중 한 팀은 스트로크 게임을 좋아했다. 그 팀은 다음 월례회에서도 같은 멤버로 조를 편성해 줄 것을 요구했다. 두어 차례 같은 팀으로 라운드를 하다가 마침내 사달이 났다. 상호간에 게임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지다 보니 라운드 중에 언쟁으로 이어졌다. 규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한 골퍼가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평소에는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으나, 긴장감이 높은 게임인지라 사소한 말 한마디가 언쟁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대자연의 심판 앞에서 라운드 중 언쟁이 어인 말인가?


당나라의 문장가인 백거이(白居易)는 이런 골퍼에게 일갈한다.달팽이뿔만큼 좁은 세상에서 어인 일로 다투는가(蝸牛角上爭何事)? 부싯돌의 불꽃만큼 짧은 시간에 이 몸을 맡겼을 뿐인데(石火光中寄此身 / 석화광중기차신).”라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달팽이뿔보다 더 좁다. 우리가 살아있는 시간은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부싯돌의 불꽃이 튀기는 찰나보다 더 짧다. 이렇게 좁은 세상, 짧은 시간에 다툰다는 게 말이 되는가? 더욱이 아름다운 산하와 청초한 풀들 사이, 꽃향기 그윽한 청풍 속에서 라운드를 하고 있지 아니한가?


위 시구(詩句)의 발원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와각지쟁(蝸角之爭)이다.

전국시대에 명가(名家)의 창시자인 혜시(惠施)는 위혜왕(魏惠王)에게 대진인(戴晉人)을 천거했다. 대진인은 위혜왕에게 “달팽이의 왼쪽 뿔에는 촉씨(觸氏)가 건국했고, 오른쪽 뿔에는 만씨(蠻氏)가 건국했습니다. 두 나라는 영토를 두고 늘 전쟁을 벌여 시체가 수만 구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패잔병들을 추격한 후 15일만에야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위혜왕이 “아! 이건 거짓말이다!”라고 하자, 대진인은 위혜왕에게 “제가 군왕에게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천지의 사방과 상하에 막힌 데가 없습니다. 이렇게 넓은 곳을 살핀 후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나라들 사이로 돌아올 수 있다면,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위혜왕이 “그렇다”고 답하자, 대진인은 “사통팔달의 나라들 가운데 위나라가 있고, 그 가운데 양읍(梁邑)이 있으며, 양읍의 가운데 군왕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어, 대진인이 ”이 군왕과 만씨(蠻氏)를 구별해낼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위혜왕은 “없다”고 답했다.


대진인이 떠난 후, 위나라 왕은 어찌 할 바를 모르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생각이 들었다. 대진인은 위혜왕에게 달팽이뿔만큼 좁은 세상에서 두 나라가 쉬지 않고 전쟁을 벌이니 가소롭기 그지 없다는 점을 지적했던 것이다.


[골드CC, 2020. 9.(필자 촬영)]


백거이의 시구와 장자의 우화는 골프장에서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는 골퍼를 따끔하게 훈계한다. 누가 얼마나 옳은 지가 중요하지 않다.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싸움터나 더 많은 성과를 내야하는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여나 귀에 거슬리는 말이 들리더라도 들으려 하지 말자. 따져야 할 경우라면 차분하게 설득하자. 게임에 긴장감이 고조되려 하면 미리 조율하자.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 아름다운 공간은 뭐가 되며 그 소중한 시간은 뭐가 되랴.


더 큰 문제는 그 멤버들과 대자연의 초록필드에서 재회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여, 도덕경(道德經)은 만물에 도움을 주면서도 다투지 않는 물에게서 배우라(水善利于萬物而不爭 / 수선이우만물이부쟁, 8장)고 했으니, 이 가르침도 같이 떠올리자.


세상에는 대립과 갈등, 시비와 언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오해와 분노, 상처와 충격으로 관계의 바탕에 금이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갈수록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장자의 우화와 백거이의 시구를 음미하며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다.


작자

✔ 백거이(白居易) : 772~836, 당나라 시인. 시문으로 신라에까지 알려졌다고 함.

✔ 대주(對酒) : 처세에 관한 시

한자

✔ 蝸牛角上爭何事 – 白居易, 對酒

[와우각상쟁하사 – 백거이, 대주]

달팽이뿔만큼 좁은 세상에서 어인 일로 다투는가?

✔ 蝸: 달팽이 와, 角: 뿔 각, 爭: 다툴 쟁, 何: 어찌 하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맺음과 그침[52]- 관계지속에 도움되는 고전지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