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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섭 Sep 30. 2024

협조할 것인가, 대결할 것인가?

청소년을 위한 게임이론 제1장 3

※ 맨 뒤에 요약이 있습니다.


┃뷰티풀 마인드


게임이론에 관한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라는 영화입니다. 존 내시(John Nash)라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돼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작품입니다. 게임이론과 관련해서 이 영화에서 가장 흔하게 추억되는 장면이 바로 ‘금발 문제’라고 알려진 장면입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담스미스의 금발

친구 3명과 함께 술을 마시던 대학생 내시는 건너편에 앉은 4명의 여성을 보게 됩니다. 그중 1명은 금발이고 나머지는 갈색 머리입니다. 금발과 눈이 마주치자 호감을 느낀 내시는 “금발이 매력 있다고 느끼는 사람?” 하며 자신이 금발을 찍었다는 표시를 합니다. 금발을 포함한 여성들도 이 청년들이 싫지 않습니다. 이에 한 친구가 내시에게 “그럼 나하고 결투할래?” 하고 도전하는 말을 꺼내자 친구 중 하나가 “너희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아담스미스의 말씀 잊었어?” 하고 선창을 합니다. 그러자 모두 하버드의 우등생인 친구들이 일제히 합창하며 답합니다. “경쟁에서 개인의 이익은 집단의 이익에 이바지한다!” 즉 경쟁을 통해 이기는 사람이 금발을 차지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말을 한 것이죠. 이는 개인의 ‘사익’ 추구가 ‘공익’으로 이어진다는 아담스미스의 혁명적인 발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친구들은 경쟁해서 이긴 사람이 금발을 갖자는 시장원리를 말한 겁니다.


존 내시의 금발

친구들이 그러고 있는 그때, 눈이 마주친 금발을 가만히 바라보던 내시는 뭔가를 깨달은 듯 득의의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아담스미스가 틀렸다며(원문으로는 Adam Smith needs revision) 이렇게 말합니다. 청년 내시의 대사입니다.


“우리가 모두 금발만 노리면 서로 경계(경쟁)하느라 아무도 금발을 잡지 못해. 그렇다고 우리가 금발의 친구들을 노려도 우린 냉대를 받을 거야. 대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나 만약 아무도 금발을 노리지 않으면 서로 방해할 일도 없고 그녀 친구들의 기분도 안 상해. 그것만이 우리가 다 같이 이기는 길이야.”


이렇게 말하자 친구들은 “네가 혼자 금발을 차지하려고 그러냐”라고 웃으면서 따집니다. 그러자 영화 속의 내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최고의 결과는 개개인이 집단 내에서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나온다는 말은 신화야. 그건 불완전한 주장이야. 왜냐하면, 최고의 결과는 자기 자신은 물론 소속된 집단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실현되기 때문이지.”


게임이론으로 받은 최초의 노벨상

이렇게 말하고 내시는 지금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인 듯 책을 주섬주섬 챙겨 들고 뛰쳐나가는데, 금발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고맙다”라고 속삭입니다. 영문을 모르는 금발은 어리둥절해하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내시는 나중에 노벨상을 받는 유명한 그래프와 수식을 책상에서 손으로 적고 있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 수학자였던 내시는 1994년 게임이론으로는 최초의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합니다. 그에게 상을 준 논문은 2페이지짜리 ‘비협조 게임’에 관한 아주 짧은 논문이었습니다.


┃협조게임과 비협조게임


존 내시가 비협조 게임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협조게임도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게임이론에서 게임의 유형은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플레이어들이 서로 협력하는가, 협력하지 않는가에 따라 협조게임과 비협조게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협조게임

‘협조게임’이란 경기자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협력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서로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 협력입니다. 각자의 행동을 서로 규제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협력이라는 개념이 생길 수 없습니다. 아울러 협력의 필요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예컨대 친구 둘이 있는데 한 사람은 머리가 좋고 다른 한 사람은 돈이 있고, 그 사실을 두 사람이 서로 안다고 할 때 협력의 필요성이 생깁니다. “우리 협력하자, 너는 돈을 내고 나는 머리를 낼게” 해야 협력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그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계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협조게임은 어떤 공동의 목표를 갖고 서로의 행동을 규제하는 계약을 게임으로 협상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비협조게임

‘비협조 게임’은 상대방과 계약이나 협력, 협상 같은 것을 하지 않는 게임입니다. 혼자서 머리 굴려서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일까를 판단하고, 그에 기초해서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반응을 결정할 뿐입니다. 전쟁터에서 적군과 아군이 세우는 전략이 이런 경우죠. 체스나 바둑, 장기와 같은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홀짝게임 역시 비협조 게임이라는 사실이 명백하지요? 내시는 2차 세계대전 때 CIA에서 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하기도 하는데, 이미 대단한 수학자였던 데다, 비협조 게임에 대한 이론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게임이론은 대부분 비협조 게임에 대한 이론입니다. 이 글에서도 협조게임이라는 별도의 설명이 없는 게임은 모두 비협조 게임입니다.


┃요약

존 내시(John Nash)는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최초의 학자입니다. 그에게 상을 준 논문은 2페이지짜리 '비협조 게임'에 관한 짧은 논문이었습니다. 게임의 유형은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협력하는가, 배신도 허용되는가에 따라 협조게임과 비협조게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협조게임(cooperative game)에서 플레이어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여기에는 약속은 지켜질 것이라는 계약이 전제됩니다. 즉 협조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공동의 목표를 갖고 서로의 행동을 규제하는 계약을 게임으로 협상하게 됩니다.


비협조게임(non-cooperative game)에서 플레이어들은 상대방과 계약, 협력, 협상 같은 것을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일까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최선의 반응을 결정할 뿐입니다. 전쟁, 체스, 바둑 등 대부분의 게임이 비협조게임에 속합니다. 이 글에서, 협조게임이라는 별도의 설명이 없는 게임은 모두 비협조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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