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게임이론 제1장 1
※ 맨 뒤에 요약이 있습니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노동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가구 내 시간배분 실증연구'입니다. 결혼한 가구에서 누가 노동시장에 참여할 것인가, 즉 노동공급을 누가 할 것인가는 가구 내에서 부부간에 시간 배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간에 시간 배분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할 것입니다. 예컨대 남편의 월급이 더 많은 경우 남편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아내는 가사노동에 참여하는 식의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요인들이 모여서 우리 사회의 노동공급이 결정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저의 박사학위 논문 '가구 내 시간배분 실증연구'는 바로 그런 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탐색하는 실질 연구입니다.
그런데 이 주제에 대한 탐색을 위해 제가 채택한 방법론이 게임이론이었습니다. 나중에 설명드릴 '내시균형'과 스타켈버그의 '리더-추종자 모형'으로 가구 내에서 부부간 시간 배분의 원리를 밝히는 내용이었습니다. 게임이론 전공자가 아니지만, 논문이 통과되고 난 뒤에도 게임이론에 대한 여러 책과 논문을 접하면서 게임이론은 제게 아주 중요한 학문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청소년에게 게임이론을 쉽게 설명하는 교과서가 하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왕 쓰려면 꾸준히 쓸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브런치의 문을 두드렸고, 작가가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게임이론을 주제로 글을 쓰겠다고 하니 주위에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너무 어려운 주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년이 이해할 수 있는 게임이론? 의도는 알겠는데 게임이론을 청소년들에게? 너무 어려운 거 아냐?” 하는 식이었습니다. 사실 시중에 쉽게 설명한다면서 나온 게임이론에 관한 책들을 보면 쉽게 설명하려다 보니 근본적인 의미를 놓치거나 여전히 어렵게 쓰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쉽게 쓰는 게임이론은 일종의 형용모순이라며 시작하지도 말 것을 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과 공력이 필요했습니다. ‘홀짝게임’에 대한 이야기에서 죄수의 딜레마 게임, 심지어 인공지능 AI까지 동원해야 했습니다.
홀짝게임은 여러분도 들어봤을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입니다. 제로섬 게임은 경영학, 경제학, 정치학 등에서도 다루는 주제이기 때문에 광범위한 팬덤(?)이 있는 게임입니다. 아마 이 글에서도 단일 주제로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가 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물론 게임이론에는 제로섬 게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궁무진하다고 할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입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게임이론의 단골 소재인데, 뒤집어 보면 이는 그만큼 중요한 소재라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알거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거나, 최소한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과 리니언시 제도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책 속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설명하고 해결하는 도구로도 사용되는 게임입니다. 그 한 예로 기업 간 배신을 유도함으로써 담합을 깨뜨리는 ‘리니언시(leniency)’ 제도를 들 수 있습니다. ‘담합’은 과점시장에서 일어나는 불공정행위로써, 법으로 금지된 행위입니다. 소수 몇 개의 기업이 독점하는 시장이 과점시장입니다. 라면, 설탕, 소주를 비롯해 이동통신, 자동차 등 우리나라에서 과점시장은 주로 재벌이 전유합니다. 담합은 몇 개의 과점기업이 가격을 얼마로 하자고,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합의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자유시장경제의 법칙을 거스르는 불공정행위로 강력한 처벌 대상입니다.
그러나 담합은 기업 간에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내부자의 자백이 아니면 수사당국이 이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바로 이 담합행위를 방지하거나 적발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도입한 제도가 리니언시입니다. 리니언시는 담합 사실을 이실직고하는 최초의 기업에게 벌금과 형사의 죄를 감면하는 제도입니다. 말하자면 담합행위를 한 기업 간에 배신을 유도하는 제도입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공정거래에 적용한 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이외에도 설계에 따라 여러 사회적 현상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죄수들은 서로를 배신하는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죄수들에게 한 번 더 선택의 기회를 준다면 첫 번째 게임에서 이들의 선택이 달라질 가능성이 생깁니다. 만약 그 기회가 영원히 반복된다면 게임의 결과에 분명히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사회적인 규율, 공동체의 형성과 같은 것들과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전개입니다. 게임이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흥미로운 주제일 것입니다. 베스트셀러였던 ‘협력의 진화’는 이기적인 인간이 지금과 같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던 메커니즘을 이런 맥락에서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면 사람들의 반응은 확실히 달라집니다. “그래 재미는 있겠네.” 그러나 여전히 남는 걱정은 있습니다. 그것은 게임이론을 청소년이나 일반인에게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걱정입니다. 사실 이 의문은 완전히 필자의 능력에 달린 것이지만 이 정도만 해도 제게는 큰 성공입니다. 적어도 게임이론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꽤 흥미로운 일이라는 공통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게임이론과 논리적 추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이론을 청소년들이 이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들에게 게임이론이 왜 필요한가, 그래서 그들이 이 글을 읽을 이유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 부분은 속된 말로 마케팅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게임이론이 논리적 추론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2021년 연세대학교 인문사회계열 논술시험에는 ‘최후통첩 게임’이 지문으로 나왔습니다. 지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두 명의 참가자가 ‘제안자’와 ‘응답자’의 역할을 맡아 돈을 나눈다. 제안자는 먼저 이 돈을 둘로 쪼개어 자신의 몫과 상대의 몫을 제안한다. 응답자가 이를 수락하면, 두 사람은 각자의 몫을 챙겨 게임을 끝낸다. 응답자가 제안을 거부해도 게임은 끝난다. 다만, 이때는 두 사람 모두 빈털터리로 집에 돌아가야 한다. 최후통첩 게임을 활용한 두 건의 실험이 진행되었다.”
학교 측은 이 문항의 출제 의도를 “정의와 불평등을 대주제로 설정하고 사회 불평등, 분배적 정의, 업적주의, 사회적 계층과 권리의 개념을 다양한 관점에서 파악하고 추론하는 능력을 평가하고자 하였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학생들이 사회과학 연구 결과를 해석하고, 인문·사회 현상을 수리적 개념을 활용하여 사고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논술시험에서 게임이론은 단골 소재입니다. 이유는, 게임이론은 경제학의 분석 도구이지만 사태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도구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는 논술시험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과 무관하게 사태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학문의 목표는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게임이론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중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다보스포럼은 AI시대에 필요한 역량 10가지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 1, 2번이 'Complex Problem Solving(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과 '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능력)'입니다. 앞으로의 미래는 그것이 사회인문학적인 영역이든 자연과학적 영역이든 논리적 사고의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게임이론과 AI
저는 코딩에 관심을 가진 지가 꽤 되는데 학원에 갈 시간은 없고 ‘생활코딩’이라는 분이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강좌를 즐겨 봤습니다. 그런데 챗GPT가 파이썬 코딩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꽤 복잡한 데이터 하나를 올려 시험해 보았습니다. 다섯 줄 정도의 명령을 수행한 결과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약 2~3분 사이에 회귀분석은 물론 그래프까지 그려내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인공지능을 다루는 논리적 사고와 나아가 그것을 뛰어넘는 예측 능력이 필요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 인공지능 기술은 게임이론과의 관련성을 점차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비지도 학습 모델인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은 최소최대문제(Minmax problem, 나중에 자세히 설명합니다.)를 푸는 방식으로 학습한다는 점에서 제로섬 게임 모델과 가깝습니다. 2017년 세계 최고의 포커 게이머 4명을 꺾고 우승한 '리브라투스(Libratus)'는 모든 경우의 수에 내시균형을 찾는 방식으로 설계된 포커 게임 AI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수년 안에 우리는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를 맞이할 텐데, 자율주행 자동차가 풀어야 할 많은 문제, 예컨대 신호가 없는 교차로에서 자율주행차의 운영, 교통체증 등의 문제도 게임이론에 해답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의 기술 원칙 두 가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앞으로 쓸 이 글은 교과서를 쓰는 느낌으로 쓸 생각입니다. 그것은 일정한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게임이론이 하나의 체계로 머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원리에 충실하되 쉽게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사실 이 두 원칙은 상호 보완적입니다. 쉽게만 쓰다 보면 원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쉬우면서 교과서 같은 책, 앞으로 글을 쓰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쓸 부분입니다. 이 글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마지막 점을 찍는 순간, 이 것이 이 글의 가장 큰 장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게임이론을 처음 접하시는 분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으시길 권합니다. 만약 게임이론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분이라면 마음에 드는 부분을 찾아 읽으셔도 됩니다. 미래 세대의 주인공인 청소년 여러분이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는데 이 글들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막연하게 게임이론에 관심이 있었던 어른들에게 더 인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게임이론에 눈을 떴습니다. 청소년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임이론 관련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게임이론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싶습니다. 게임이론은 그저 이론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학입학시험에도, 공정거래를 저해하는 담합행위를 깨기 위한 제도에도, 그리고 AI시대에도 게임이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쉽게 쓴 게임이론 교과서】를 지향합니다. 게임이론의 체계를 쉽게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막연하게 게임이론에 관심이 있었던 어른들이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