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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ommar Nov 08. 2021

우리나라와 유럽의 하의실종과 지속가능성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일까

한국에서 가끔씩 매우 짦은 하의를 입어 "하의실종"이 화두가 될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씨스타의 하의실종이 있습니다.

(너무 오래 전인데.. 나이가 좀 들었나요? ^^;;)


2015년에 발매한 가인의 "파라다이스 로스트"는 골반뼈와 엉덩이가 다 보이는 파격적인 노출 수위로 논란이 되었다고 합니다.

<파라다이스 로스트> 뮤직비디오 중


그런데 유럽에서는 사실 이런 정도의 노출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일상에서 이러고 다니면 굳이..?? 라는 시선을 받기는 하지만 파티에서 입고 오면 의상의 하나로 취급을 받습니다.



유럽 가요분야의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유로비전 콘테스트를 위해 유럽의 각국에서 예선을 벌이는데요,

스웨덴에서는 이전에 소개했었던 멜로디페스티발렌이 그것에 해당하고,


노르웨이에서도 멜로디 그랑프리라는 예선전이 있습니다.


2021년 멜로디 그랑프리에 출전한 Raylee는 하의실종 패션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2021 노르웨이 멜로디 그랑프리, Raylee의 <Hero>

국토는 우리나라의 몇 배에 해당하지만, 인구는 다 합쳐봤자 우리나라의 절반도 안되는 북유럽 국가들의 특성상 스웨덴의 멜로디페스티벌, 노르웨이의 멜로디 그랑프리 등 북유럽 각국의 유로비전 예선전 은 공통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에 노르웨이 멜로디 그랑프리의 결승전에 진출한 Raylee의 무대는 스웨덴에서도 나름 관심을 끌었습니다.


전체 유럽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북유럽에서 이와 같은 하의실종은 딱히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금기가 되었을만한 남성의 몰래카메라 촬영도 스웨덴에서는 드라마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Kärlek och anarki(러브 앤 아나키)> 트레일러

하의실종이나 몰카는 유럽에서는 나름 소재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금기시될만큼 큰 문제가 되는 일인데요, 너무나도 유교적인 게 문제라고 생각되기도 하죠?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북유럽에서 하의실종으로 "싼 여자"라거나, "저렇게 입었으니 성추행해도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어도 겉으로는) 찾아볼 수 없고, 그런 주장을 한다면 모두가 기함하고 쳐다볼 것입니다.


몰카 또한 오히려 피해 여성에게 "OO녀"와 같은 별명을 붙이는 문화는 없습니다.

일어나지 않아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스웨덴에서 누군가가 그런 별명을 붙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할 수 없군요.


내가 하의실종 패션을 입더라도 "성폭행 당해도 싸"라는 말은 들을 일이 없고, 몰카피해를 당하더라도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탓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음지가 아니라) 미디어에서도 다룰 수 있는 수면 위의 이슈가 될 수 있고, 조금 더 과감한 시도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가끔 우리는 어떤 결과만 보고, 가령 "하의 실종"이나 "몰카"가 외국에서 금기시되지 않는 것을 보고

"봐봐, 외국은 이렇게 자유로워!"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런 결과에는, 실제로 그것을 어떤 범죄에 활용하지 않을 거라는 사회의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유기체입니다. 이해하기에 너무나도 복잡합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공부한 지속가능성 분야는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가 답이 되는 것 같은 학문입니다.

어떤 결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원인들은 너무나도 다양해서 이것을 추론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지구과학이 이런 느낌이라고 하네요. 넓디 넓은 우주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정말 극히 일부분이라고 하죠?)

난 아무 것도 몰라요~~ <왕뚜껑> CF 중.

그래서 지속가능성은 "답이 이거야!!"라고 말하며 모두 한 방향으로 갈 때 잠깐 멈춰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라고 말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문제에 대해 쉬운 답은 (있으면 너무 좋겠지만)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근 방역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쓰고 있는데요,


코로나19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마스크도 아니고 백신도 아닙니다.

이것들이 기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원인들이 너무나도 다양해서 "마스크 쓰면 끝나" 또는 "백신 맞으면 끝나"와 같이 쉬운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전부터 이런 주제로 포스팅을 했는데.. 결국 제 말이 맞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헛 것을 배운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합니다. 사실 그냥 마스크 쓰거나 백신 맞으면 끝나는 게 더 좋기는 하죠..)


그래서 사실 할 수 있는 말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함께 노력하자"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원인이 있어서, 뭐가 해결책인지 모르니 어쨌든 함께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밀폐된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해보고, 중증과 사망의 예방이 있는 것 같은 백신을 맞아서 위험을 조금이라도 낮춰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우리사회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마스크 안 쓰면 죄인"이라거나 "백신 안맞으면 죄인", "백신패스 도입"과 같은 어떤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함께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 누군가를 악마화하는 것은 이 노력을 어렵게 만들거나 필요 없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가령 "백신 안 맞는 사람"이 죄인이라면 백신 맞은 나는 코로나19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돌파감염은 그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어떤 문제는 단순화하면 안됩니다.)


저는 제가 배워서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이 정말 좋습니다. 모두가 지속가능성을 마음에 두고 행동한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조금 더 좋은 사회를 꿈꿀 때, 그리고 좋은 사회를 위해 우리가 함께 자기의 위치에서 조금 더 노력할 때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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