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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ommar Nov 20. 2021

제로 코로나의 실패, 지속가능한 방역 스웨덴의 교훈

장기전을 위해서 필요한 건 연대

<뉴스톱>에 제가 보낸 의견문이 실렸습니다. (의견문인데 기고문이라고 표현해주셔서 송구스럽네요.)

아래 네모박스를 클릭하시면 이동할 수 있습니다.


몇가지만 인용합니다.

코로나19 통제로 인한 유아의 발달과 인지 장애, 어린이와 청소년의 장기적 건강 저하, 노인의 정신적 고립감 증가는 모두 공중보건이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문제들입니다. 공중보건은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전체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며, 제한조치로 인한 코로나19 통제의 이익이 그 비용보다 클 때만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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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코로나19 통제에 성공했지만 연대의식은 갈갈이 찢겨나간 것 같습니다. 확진자 동선 공개는 모 교회, 모 클럽, 모 집회 참석자 등을 차례차례 악마화했습니다. 백신 미접종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역 패스 제도는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찢어놓고 있습니다. 이 갈등과 상흔은 단계적 일상회복이 완성되어 모든 제한이 사라진 이후에도 두고두고 남아 한국 사회를 괴롭힐 것입니다.
...

이에 비해 스웨덴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대를 주장합니다. 책임 있는 행동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ta hand om varandra, skydda dig och andra)는 입장을 끝까지 견지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스웨덴의 관심은 코로나19의 피해를 더 크게 입은 이민자와 저소득층 등을 향해 있습니다.
...

기나길었던 우리의 제로 코로나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스웨덴의 사망자가 주는 실패는 타산지석으로 삼되, 강제적 통제조치보다는 자발적 연대를 전면에 내세운 스웨덴의 지속 가능한 정책은 우리에게 분명 함의가 있습니다. 모든 통제조치가 사라진 이후에도 코로나19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아프면 쉴 수 있는 문화와 함께,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연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낸 제목은 이 블로그 글의 제목인데, <뉴스톱>에는 조금 더 자극적으로 제목이 실린 것 같습니다. ("한국"이 갑자기 끼워들어갔네요. 제로 코로나는 한국만 택한 전략은 아니고 사실 대부분 국가가 선택한 전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기사 제목의 수정 가능성을 물어봤는데, 제목은 편집자의 권한이라고 합니다.)


저는 한국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코로나 자체에 대해서는 한국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 제목은 개인적으로 제가 논의되었으면 하는 "연대"와 "지속가능성"을 다른 방향에서 저해하고 있기 때문에 블로그 글의 제목이라고 생각하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전략, 가령 예를 들어 한국의 "제로 코로나"라든지, 스웨덴의 "노인 보호" 전략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할 자격은 저 의견문에도 있듯 저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유기체이고 여러 가지가 연결되어 있어 무엇이 원인인지, 어떤 것이 해결책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결국 그 때 필요한 건 강제적인 방역 규칙이 아니라 자발적인 연대입니다.


모든 규칙이 사라진 이후에도―가령 마스크 없이 마음껏 돌아다녀도 되는 그 날이 온다고 해도― 코로나19를 포함한 여러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때 우리를 지켜줄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아프면 쉬겠다는 나의 배려와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연대의식밖에는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의 글을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방역당국을 향해 분노를 표현한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몇 개 글은 비공개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저도 많이 지쳤나봅니다.


하지만 제가 항상 하고 있던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봅니다.

코로나19는 끝나지 않습니다. 결국 받아들여야 하고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야만 합니다.


위드코로나는,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되돌릴 수 없는 거대한 물결입니다.

다시 신발끈을 잡고, 내 옆사람의 손을 잡고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과 어떻게 하면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나눠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께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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