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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ommar Aug 01. 2021

노르딕 누아르의 AtoZ, The Bridge (1)

가장 완벽한 범죄 수사물

노르딕 누아르라는 장르를 들어보셨나요?


한국 사람들은 누아르 장르라고 하면 홍콩 영화가 생각나듯이,

유럽 사람들은 누아르 장르라고 하면 북유럽의 노르딕 누아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누아르 작품인 <아저씨>도 홍콩 누아르와 비슷한 느낌으로 갱단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둬두는 공간 등 좁고 깨끗하지 못한 장소가 자주 나옵니다.


그에 비해 노르딕 누아르는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넓고 황량한 공간을 배경으로 할 때가 많은데요,

<The Bridge> (원제는 스웨덴어로 <Bron> 또는 덴마크어 <Broen>) 역시 맑고 화창한 스웨덴의 여름과는 반대로, 우중충하고 황량한 겨울을 배경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에서 진행됩니다.

<The Bridge> 시즌1의 오프닝

<The Bridge>는 그 엄청난 인기 덕분에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거의 10년을 이어온 작품입니다.

유럽권에서 영국, 독일, 에스토니아가 리메이크하는 것을 넘어서 미국, 심지어 아시아인 싱가포르에서도 리메이크가 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요,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는 아니지만, 비슷한 설정의 드라마가 있네요.

바로 유명한 <비밀의 숲>입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비밀의 숲>의 황시목 검사처럼,

<The Bridge>의 주인공 스웨덴 말뫼 경찰 사가 노렌 또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어 규칙에 집착하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때문에, 범죄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규칙에 집착해서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앰뷸런스도 통과를 안시키죠.

규칙을 지켜야한다는 강박이 있는 사가 노렌은 범죄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앰뷸런스조차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황시목 검사를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한여진 경감처럼 <The Bridge>에는 덴마크 코펜하겐 소속 경찰인 마틴 로데가 있습니다.

완벽한 인물에 가까운 한여진 경감과는 달리 마틴 로데는 본인의 결함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뛰어난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사가 노렌을 도와주려고 노력하죠.

그런 사가 노렌에게 사회생활(?)을 조금씩 가르쳐주는 건 마틴 로데 형사입니다.

스웨덴의 사가 노렌과 덴마크의 마틴 로데가 공조 수사를 펼치는 <The Bridge>는 노르딕 누아르의 여러 특징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가령, 말뫼와 코펜하겐을 연결하는 외레순(Öresunds) 다리를 장면 전환 시에 보여주며 황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주인공이 다루는 범죄는 당대의 사회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령, 시즌 1에서는 경제적 능력 차이에 의한 사회적 신분 문제 등을 다루고, 시즌 2에서는 환경 문제와 더불어 테러 문제 등을 다루며, 난민 논란이 심각해진 시즌3에서는 난민 문제를 다룹니다.)


범죄 드라마물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중요한 이슈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기록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우리나라의 범죄물은 지금까지 개인적 원한이나, 사이코패스에 의해 설명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마우스>가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사이코패스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비밀의 숲>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수사물 중 하나인 <시그널> 또한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사이코패스의 손을 빌려 범죄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도 있듯, 사실 범죄는 꼭 사이코패스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죠?

<The Bridge>가 공감이 가고, 잘 만들어진 드라마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사이코패스처럼 이유 없는 살인이 아닌(혹은 "죽여야 한다"라는 1차원적 이유),

범죄자의 동기가 명확해서 왜 그런 행동을 벌였는지 조금 더 설명력이 높은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비슷하게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다룬 <모범택시>의 경우, 일부러 악역에게 서사를 주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세상에 이유 없는 범죄는 (사이코패스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없습니다.


물론 그 이유로 범죄자를 옹호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적절한가는 또다른 문제지만,

악역에게도 서사는 있고, 서사를 바탕으로 현실성 있는 범죄를 만들어냄으로써 현실성을 높이고, 범죄가 우리 주변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화려한 CG를 사용했지만, (물론 가끔씩 일어나지만) "현실성이 부족한"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면 된다는 논리에 묻히는 <판도라>보다,

화려한 CG 없이도 지금 이 순간도 만들어지고 있는 골칫덩이인 방사성폐기물 문제를 다룬 <WHITE WALL>이 원전의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보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때문에,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다루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악역에게 아무런 서사가 없는 우리나라의 드라마가 다소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면,

노르딕 누아르는 이를 정면에서 맞선다는 점에서 조금 특별한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이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을 피하는 것은, 청소년 대상 성교육 등 다른 지점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죠.)


그리고 이 지점 덕분에 <The Bridge>는 볼만한 가치가 있는 드라마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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