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dsommar Sep 24. 2021

기후변화와 코로나19,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을 기억하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도록

기후위기는 이제 우리의 실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점점 더워지고 있고, 대기 정체로 인해 공기질 또한 나빠지고 있습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아무리 브레이크를 세게 밟아도 교통사고를 피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브레이크를 안 밟으면 사고의 규모와 피해가 더 커지기 때문에, 가능한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아서 피해의 규모를 최소화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여러 선진국과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의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며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습니다.

출처: 탄소중립위원회

탄소중립의 미래상은 어떨까요?


휘발유나 경유 등 화석연료를 필요로 하는 내연기관차는 설 자리를 잃고 전기차나 수소차 등 화석연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동차로 대체됩니다.

전기 또한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고, 풍력이나 태양광 등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재생에너지를 이용해서 생산합니다.

마찬가지로 석유를 이용하여 뽑아내는 플라스틱은 퇴출됩니다.


즉, "화석연료 없는 사회"가 오게 됩니다.

 

기후위기의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모두가 향유할 수 있습니다. 원활한 대기 흐름으로 조금 더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갯벌과 같이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장엄함을 함께 느낄 수 있고, 산불이나 홍수 등 기후재난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로 인해 멸종 위기에 놓인 생물 중 일부가 살아남을 수도 있을 겁니다(안타깝지만 기후위기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북극곰은 멸종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온실가스를 줄이고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한 일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 변화의 과정에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가령, 전기자동차는 더 이상 복잡한 부품이 필요없다고 하죠?

자동차 부품업체의 직원들은 뒤에 남겨질 것입니다.

석탄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또한 남겨질 것입니다.

석유에서 뽑아내는 플라스틱업체에서 종사하는 노동자 또한 남겨질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탄소중립은 이루어야만 하는 과제이지만,

이 과정에서 뒤에 남겨지는 누군가에게 탄소중립은 "실직"이나 "경제적 위기"로 다가옵니다.


"너만 죽으면 우리 모두가 살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이 필요합니다.


가령, 자동차 부품업계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사회에 필요한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일자리 또한 알아봐줄 필요가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부품공장 대신해서 지어질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가르쳐주고 일자리를 알아봐줄 수 있겠죠.


자동차산업이나 석유화학 등 탄소중립 시대의 퇴출업종이 동시에 발달한 도시의 경우(울산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해당 지역을 특별히 배려해주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폐쇄된 부품공장의 부지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이 지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특정 누군가의 책임이 아닙니다. 가령, 석탄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사용하는 우리가 있는 한 기후위기는 모두의 책임입니다. 우리 모두는 기후위기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 피해를 가능하면 모두가 나눠가짐으로써 개인이 받는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누구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사회 구성원들의 숙의를 거쳐 공정하고 정의롭게 탄소중립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겠다는 것이 기후변화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만약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기후변화 대응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력"이 되어버리고야 말 것입니다.


코로나19 대응도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합니다


저는 코로나19가 기후변화와 유사한 점이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의 모습이 남유럽의 산불과 서유럽의 홍수 등 각종 자연재해로 나타나듯,

코로나19 또한 전세계는 수많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한국 또한 빗겨가지 못했습니다.


기후위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듯,

코로나19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표되는 여러 전략을 준비해서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기본 원칙에 공정성의 원칙이 포함되어 있는 것과 달리,

코로나19 대응 원칙에 공정성의 원칙을 고려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가령,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인해 영업시간 손실 등을 입은 자영업자에 대한 피해보상은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교는 문 닫기에 가장 만만한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교육기관의 경우 학교에 가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건강과 기대 수명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의 확진자 수를 줄이기 위해 이들의 희생은 강요되었습니다.


의료진과 방역담당 공무원 등의 스트레스 또한 심각한 수준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 보건소 종사자의 월평균 근무시간은 팬데믹이 없었던 2019년에 비해 88.7%, 105.3% 증가했다고 합니다. 모든 지역에서 월평균 초과근무시간이 상승했고, 누적되는 업무로 인해 번아웃 현상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택배노동자 등 코로나19로 인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또 있습니다. 택배 물량이 30% 느는 동안 택배산업의 산업재해는 300% 증가했다고 합니다. 지나친 노동시간에 시달림은 물론, 제대로 된 직업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 큽니다.


코로나19 피해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세부적인 조치들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개인별로 입장이 다 다를 겁니다. 이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엉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조치들을 시행하는 데 있어 공정성의 원칙이 지켜졌는지에 대해서는 대응이 대성공이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 또한 쉽사리 동의하기 힘들 것입니다.


자영업자들, 어린 학생들, 방역이나 비대면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 등, 코로나19의 피해는 누군가에게는 훨씬 더 크게 다가왔지만, 이 피해를 함께 나누는 정의로움은 부족했습니다.


"확진자 수 폭발"과 같은 자극적 기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백신 접종이 가속화되며 사망자 수는 여전히 안정적으로 통제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급격하게 높아지는 확진자 수에 놀라며 "위드코로나가 미뤄질 수 있다"라고 말하며 논의를 미루고자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위드코로나(일상 속 코로나, 생활 속 코로나, 단계적 일상회복 등으로도 불립니다)가 무엇을 뜻하는 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만(실제로 여론조사에서도 위드코로나에 대한 인식이 제각각인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 위드코로나 논의에서 방역 조치를 얼마나 완화하고, 일상은 어느 수준까지 즐길지를 논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코로나19의 위험과 피해를 사회가 함께 짊어지겠다는 공정성의 원칙이 반드시 논의되어야만 합니다. 이 논의는 사실 1년 8개월을 미뤄왔기도 합니다.


위드코로나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의로운 전환"이 되어야만 합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책임을 분담해야 합니다. 가령 석탄발전을 조기에 폐쇄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추가로 부담하거나, 자동차 부품산업이나 석유화학 산업 등 사라지거나 축소되어야만 하는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다른 분야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추가적인 세금을 내야할 지도 모릅니다. 물론 물가는 안정되고 세금은 적은 게 좋겠습니다만, 기후변화는 마법처럼 해결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책임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힘에 맞는 고통을 분담해야만 합니다.


코로나19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책임이 있고, 고통을 분담해야만 합니다. 가령 모든 방역조치가 해제된다면 의료진을 훨씬 더 많이 보충해야만 할 것입니다. 공공의료를 확충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과 재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민간 영역에서 치료를 분담한다고 할지라도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많은 재원이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일정 수준의 방역조치가 유지된다면 이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 대한 적정한 보상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내야할 비용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경제적 보상 뿐만 아니라 심리적 지원 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함은 두말할 힐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위드코로나로 정의로운 전환을 할것인지에 대한 세부사항은 가능하면 다양한 구성원 숙의를 거쳐 도달해야 합니다.


코로나19의 터널에 들어갈 때 우리는 자영업자와 어린이, 청소년 등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주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의 뼈아픈 잘못입니다.

터널에서 빠져나올 때는 정의롭고 공정하게,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다함께 빠져나와야만 합니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책임성, 포용성, 공정성, 합리성 등 여러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더 높아집니다.

이 원칙들은 기후변화 대응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코로나19 대응의 원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지구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19 vs 백신 접종, 무엇이 더 위험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