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밭, 엄마의 자판가게
엄마의 자판가게
아빠의 밭 이야기, 엄마의 자판가게
"놀면 뭐 하냐"는 말에 나는 공감하지 않는다.
"놀고 있는 땅이 아깝다"는 말에도 나는 공감하지 않는다.
다만, 너무 좋아하시니까. 정말 진심이시니까.
부모님 하시는 일에 딸인 내가 감히 허락을 한다거나, 반대할 입장은 아니다.
그저 걱정이 된다. 좋은 거 먹이고, 좋은 것들로 키우고 싶어 애쓰시는 그 마음이.
아버지는 요즘도 유튜브를 보며 농사 공부를 하신다. 농사에 진심이시다.
어릴 적 지게질에 굽었던 그 등,
이제는 자식들 키우느라 더욱 깊어진 그 등이
지금도 여전히 땅을 향해 굽고 있다.
그 거친 손으로 좋은 땅을 만지시고,
그 땅에서 나오는 싱그러운 생명들을 우리가 먼저 먹는다.
그리고 남은 것들은 엄마의 작은 자판가게로 간다.
아파트 입구에서 시작된 자판은 어느덧 5년째다.
밭에서 그날그날 수확한 보석 같은 채소들을
엄마는 정성껏 다듬어 바구니에 올려놓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젠 마지막이야” 하셨는데,
올해도 첫 자판을 다시 여셨다.
좋아서 하시는 거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난 걱정이다. 오빠에게도 말한다.
우리 남매는 걱정이지만, 그 마음을 쉽게 내놓진 못한다.
“욕심부리지 마세요.”
돈의 욕심이 아니다.
‘팔고 싶다’는 그 욕심도 아니다.
그저 ‘일을 하고 싶은 욕심’이 크셔서 걱정이다.
아버지는 한번 밭에 들어가면 좀처럼 안 나오신다.
마치 연구 중이신 사람처럼.
“적당히, 대충 하세요” 해도, 그건 아버지 사전에 없는 말이다.
잘생기셨던 얼굴, 세월 따라 늙어가고
한 해 한 해, 몸이 달라지시는데도
가꾸고, 여행 다니시고, 좀 쉬셔도 좋을 텐데
밭일이 좋다며, 밭으로 가신다.
엄마의 자판은 아파트 주민 단골도 많다.
엄마 휴대폰엔 단골들 이름이 저장돼 있다.
“몇 동 사모님, 몇 동 사모님.”
물건을 사주니까 사모님인 걸까.
그 전화번호들을 볼 때면
마음이 한번씩 무너진다.
누가 누구 보고 사모님이래…
딸 입장에서는 짜증도, 속상함도 몰려온다.
같은 아파트에 살며 나도 어느덧 쉰이 넘었는데
지나가던 이가 “따님이시구나” 말하면,
그 말은 두 가지로 들린다.
‘딸도 있는데 왜 이렇게 장사를 하실까?’
혹은
‘딸이 가까이 살아서 좋겠어요.’
나는 가끔 엄마 자판 옆,
동그란 목욕탕 의자에 앉아 싱싱한 채소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하는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그 작은 자판에서 당당하게 만든다.
“이 좋은 채소들, 내가 다 먹을 수 있는데 나누는 거야.”
그렇게 말씀하시며 더 드리기도 하신다.
하지만 더 깎아달라는 사람,
물건 맡겨두고 안 오는 사람,
배달해 달라는 사람도 있다.
집에 돈 가지러 간다며 안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엄마는 5년 세월 동안
이제는 자판 인생의 '장사치'가 되셨다.
엄마의 자판은
외로운 할머니들의 집합 장소가 됐다.
아파트 경로당보다 더 따뜻한 공간.
엄마의 가게가, 그들의 수다 공간이 됐다.
여사친들과 자식 자랑, 남편 욕,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 험담까지
들으며, 야채를 팔고 또 다듬는다.
그 모습은 그저 ‘장사’가 아니라,
‘동네 공동체’의 중심이다.
그래서 엄마 손톱은 늘 까맣다.
고구마 줄기 까느라
겨울이 지나고 또 시작되면
다시 까매질 손톱이지만
그건 엄마가 선택한 늙어가는 방식이다.
우리 남매는 바란다.
그저 건강하시길.
붙어 계시되, 서로 다투지 마시길.
땀 흘리시니 땅이 좋아하고,
한잎 한잎 만져주시니
푸릇푸릇 잘 자란다.
열매는 맛있고,
예쁘게 옷 입고
엄마의 자판 위로 올라온다.
어떤 디스플레이보다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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