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숨은 보물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벽에 마음을 새기다

by 호뚜니의 작은방



벽에 숨은 보물들

그저 커피 한 잔 하러 들렀을 뿐인데, 문득 눈길이 벽에 머물렀다.
하얗던 벽은 수많은 손길을 지나며 낙서로 가득해져 있었다.
짧은 문장들, 거칠게 그어진 그림들, 전화번호, 날짜, 고백, 푸념, 철학적인 질문까지.
누구나 한 번쯤 흘려보냈을 법한 단어들이 서로 기대어 벽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동굴 벽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시간의 흐름은 날짜로 남아 있었고, 누군가의 외로움은 구애로, 사랑은 이름으로, 철학은 짧은 문장으로 벽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이 벽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마음, 그 단면들이었다.

가장 높은 곳엔 누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이 있었고, 그 옆엔 ‘엄마 사랑해’라는 문장이 작고 단단하게 적혀 있었다.
질투와 험담도, 상처받은 흔적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인간적인 풍경으로 다가왔다.

그중 오늘 내 눈에 들어온 문구는 이것이었다.

“돈은 신의 영역일까? 신은 돈을 만든 적이 없다고 하는데.
돈맛은 쓴 베이킹소다 맛이다. 뒤가 구린 놈이다.”

왜 하필 이 문장이었을까?
요즘 내가 돈의 쓴맛을 보고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뒤가 구린 놈이 되지 못했기에, 그래서 더 쓴맛을 보는 중인 걸까?
문득 떠올랐다. 돈의 단맛을 잠시 맛본 적이 있었던가?
그때 나는 과연 행복했을까? 행복이란, 단맛이었을까?

이 문장을 적은 사람은 어쩌면 세상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돈의 단맛보다 쓴맛을 택했다.
뒤가 구린 놈보다는 헐벗은 내가 더 떳떳하다.’
그 자부심이 문장이 되어 벽에 새겨진 건 아닐까.

사람들은 낙서를 할 때, 사실은 자기 마음 한 조각을 남기는지도 모른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말,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감정.
그래서 벽은 자백의 공간이 된다.
한 줄의 낙서 속엔 그 순간 그 사람이 마주한 삶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 벽 앞에 선 나는, 내가 미처 흘려보낸 말들, 말하지 못한 생각들, 숨기고 싶은 진심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낙서들 틈에서 나도 작은 보물을 하나 발견한 기분이었다.
나도 문득, 어느 벽엔 한 줄쯤은 남기고 싶어졌다. 말하지 못한 마음, 흘려보낸 생각들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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