쏭 ,기억할게
저녁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한 친구를 만났다.
미얀마에서 온 스물네 살 대학생, 쏭이었다.
쏭은 자기 나라가 전쟁 중이라 공부할 수 없어
한국에 왔다고 했다.
"그래도 K-드라마랑 K-POP은 익숙해서…
한국어가 귀에 익으니까 여기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 말이 참 애틋하게 들렸다.
쏭의 부모님은 한국행을 반대하셨다고 했다.
오빠는 일본에서 직장에 다니지만,
딸을 혼자 타국에 보내는 건 너무 마음 아픈 일이었다고.
그 마음을 나도 잘 안다.
그래서인지 쏭의 서툰 한국말도
내 귀에는 또렷하고 분명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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쏭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건
아르바이트 시작 후 사흘쯤 지나서였다.
그날, 쏭이 조심스레 내게 다가와
두 종류의 약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건 방광염 약, 이건 해열제예요.
에어컨이 너무 추워서… 허리랑 등이 너무 아파요.”
"배 아파?"
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듯 쏭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얼마나 아팠으면, 얼마나 외로웠으면.
낯선 땅에서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한 채
약국을 찾아 서툰 한국말로 약을 산 그 아이가
너무 마음 아팠다.
“쉬할 때 아파?”
쏭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 나와?”
“아니요.”
밤 9시가 넘은 시각,
약국은 이미 문을 닫았다.
나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쌍화탕과 몸살약을 사 와 건넸다.
"이거 먹고 따뜻하게 자.
내일 병원 같이 가자."
쏭은 물었다.
"약 꼭 먹어야 해요?"
나는 웃으며 쏭의 등을 ‘툭’ 쳤다.
"당연하지. 다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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쏭은 약을 먹으며 또 울었다.
"너무 써요…"
나는 쌍화탕을 건네며 말했다.
"이건 좀 괜찮지?"
"응, 이건 좋아요."
그 모습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쏭은 미얀마에서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병치레 없이 자라난 순한 아이였다.
가게 맞은편 병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일 10시에 여기 가자. 저기가 비뇨기과야."
“진짜요? 몰랐어요…”
병원이 눈앞에 있는데도 몰랐단다.
타향살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날 밤, 혹시 너무 아파질까 봐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말했다.
“너무 아프면 꼭 전화해.”
쏭은 전화하지 않았다.
약 먹고 잠들었다고 믿으며,
나는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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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막내를 학교에 보내고 쏭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착했어요."
쏭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다행히 유학생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었고,
쏭은 ‘신우신염’ 진단을 받았다.
염증이 방광을 넘어 콩팥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30분짜리 항생제 수액 주사를 맞아야 했다.
"주사 처음 맞아봐요. 무서워요…"
쏭은 또 울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쏭, 지금 아픈 건 몸이야.
주사는 아프려고 맞는 게 아니라,
낫자고 맞는 거야."
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문득 드라마 더 글로리의 대사가 떠올랐다.
"알아들었으면, 끄덕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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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미얀마에 있는 쏭의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끊고 쏭은 말했다.
"아빠가 이모께 감사하대요."
나도 생각해봤다.
내 딸이 일본에서 아팠는데,
어떤 일본 사람이 병원에 데려가 줬다면
나도 정말 평생 감사할 것이다.
나는 엄마라서 그런 게 아니다.
착한 사람이라서도 아니다.
그저 울고 있는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에게 내 손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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쏭은 약을 들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사장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아침엔 죽을 챙겨 먹이고 약도 먹여 보냈다.
나는 저녁 아르바이트,
쏭은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한다.
표현은 못 했지만, 나는 꼭 당부했다.
“다음엔 아프면 바로 나한테 말해. 알았지?”
낯선 땅에서,
단 한 명이라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쏭에겐 아주 소중한 연결고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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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막내와 쏭을 데리고
뷔페 식당에 갔다.
쏭은 예쁘게 차려입고 왔다.
스물네 살 대학생의 본래 모습이었다.
"넌 지금 아르바이트할 뿐이지.
졸업하면 네가 원하는 길로 갈 수 있어.
지금 이 일로 네 자존감 깎지 말고, 잘 지켜."
막내는 쏭에게 계속 물었다.
"언니, 미얀마 말로 '모'는 뭐예요?"
쏭은 웃으며 대답했고,
맛있게 비빔밥을 먹으며 말했다.
"한국 음식, 진짜 맛있어요."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쏭의 마음속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자라고 있음을.
그리고 나는 소망한다.
그 안에 고통과 아픔보단
따뜻했던 연결이, 웃음과 온기가
더 오래 살아남기를.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쏭이 이 낯선 나라에서
'생존'이 아닌 '삶'을 살아가기를.
작고 여린 몸 안에 깃든
큰 용기와 따뜻한 마음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더 깊은 꿈을 꾸고,
더 단단한 자신으로 자라나기를.
그리고 언젠가 쏭이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은 내게 두 번째 고향이에요.
여기서 사람을 만났고, 사랑을 받았고,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한국이 쏭에게
두려움보다 희망이 많았던 나라로,
아픔보다 가능성이 더 크게 자란 땅으로
기억되기를.
그리고 그 곁에
조용히, 그러나 든든하게
‘이모’로 함께였던 나를
쏭이 기억해주기를.
쏭아, 한국에서 오래오래 잘 살아가렴.
이 낯선 나라가 너의 꿈을 품어주는
따뜻한 집이 되어주기를.
너의 빛나는 날들을 진심으로 응원할게.
우리가 연결되었듯, 당신의 마음도 누군가와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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