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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튼 입성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Day 8> 9월 28일


아침부터 근육배틀이 벌어졌다.(배틀 사진은 두 남자의 상반신 나체 사진이라 포스팅할 수가 없다!) 아빠는 한참 근육 키우기에 몰입한 손자가 귀여우신가 보다. 두 남자가 웃통을 벗고 온갖 포즈를 취해가며 근육들을 자극했다. 잠이 덜 깬 아들의 눈도 다 뜨지도 못하고 온몸의 힘을 끌어모아 근육에 집중하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있는 힘껏 팔뚝과 가슴근육을 끌어올리며 근육 자랑이 한창이다. 두 근육맨들의 자존심을 위해 나도 덩달아 "우와! 멋지다! 최고야!"를 외치며 전문 사진사 처럼 요리조리 사진을 찍어댔다. 젊을 때부터 지금까지 근육맨이라는 명성을 놓치지 않으셨던 아빠는 손자에게 근육 만드는 비법을 전수하셨다. 늘 철없이 덩치 큰 아기처럼 느껴졌는데 아빠가 오신 후로 아들이 부쩍 성숙해진 것 같기도 하다. 할아버지의 무한한 칭찬이 아들에게 성숙의 거름이 되는가 보다.




샤워할 때마다 질질 문틈으로 물이 새어 나와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하루이틀 미뤄오다 몇년이 지나버렸는데 오늘 드디어 아빠가 실리콘 작업을 해주셨다. 어렸을 때 집안 구석구석 실리콘 작업을 하셨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도 아빠의 손길이 지나간 곳이면 집안 구석구석이 광이 나고 새것이 되었었다.


화장실 손보시는 아빠




나는 요리 똥손이다. 그런데도 가장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디저트가 있다면 바로 '바나나 브레드'다.

마켓에 갔을 때 빵에 관심을 많이 보이시길래 오늘은 마음먹고 오랜만에 베이킹을 했다. 역시 빵은 집에서 구워야 마음이 놓인다. 아빠는 기쁜 마음으로 보조 주방장을 자처하셨고, 막내딸까지 베이킹을 도왔다. 아빠가 가실 때 몇 덩이 더 구워서 냉동으로 보내드려야겠다. 검열에 걸리진 않겠지? 오랜만에 집안에 달콤한 냄새가 가득하니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다.

한 덩이는 기숙사에서 공부하는 큰딸을 위해 포장해 두고, 한 덩이는 에드먼튼에서 공사를 시작하게 되면 간식으로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다. 부디 이 달달한 간식이 힘든 인테리어 막노동에 기쁨이 되길 바란다.

바나나 브레드




만 14세, 우리 집 막내딸은 학생 운전면허를 통과한 지 이제 겨우 2개월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타운에서만 조심스럽게 운전 연습을 했었는데, 오늘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첫 고속도로 운전에 도전을 했다. 딸 셋 운전연수를 손수 시키셨던 아빠는 이번에는 막내손녀 운전연수에 들어가셨다. 오랜만에 뒷좌석에 앉아본 나도 불안한 맘 내려놓고 사장님 놀이나 해야겠다.

단풍이 예쁘게 물든 알버타 고속도로를 막내손녀딸을 운전기사 삼아 이동하시는 아빠는 연신 감탄사를 내뿜으셨다. 우리 아이들이 할아버지께 해드릴 수 있는 게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아이들 어릴 때는 차속에서 울고 싸우느라 창밖구경도 제대로 못하셨는데 7년이란 시간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다. 하나님이 만드신 멋진 풍경을 만끽하며 우리는 에드먼튼으로 향했다.

첫 고속도로 운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에드먼튼 공사를 처음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20년 작업치료사일을 훌륭히 해낸 신랑을 축하하기 위한 날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준비한 선물, 무소음 전자 기타도 딱 제때 도착했다. 앞으로 해쳐갈 모든 어려운 일들 속에, 이 작은 기타가 그대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어주길 바라며, 아이같이 신나 하는 모습에 온가족이 피곤하지만 흐뭇한 밤이 깊어가고 있다.


내일 드디어 우리의 공사가 시작되는 날이다.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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