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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엔 맛있는 걸 먹어야지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Day 11> 10월 1일


알버타 하이웨이를 지나다 보면 넓은 들판에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워 보이는 소들을 볼 수 있다.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럴까? 알버타 소고기는 세계적으로 일등 소고기라 소문이 났다고 한다.

아빠께 최고의 고기를 대접해 드리기 위해 지난주 코스코에서 스테이크를 사 왔다.

오늘은 고기 굽기 딱 좋은 비 오는 날이다.

스테이크로 저녁을 먹고, 빗소리를 들으며 케이크와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에 아침부터 괜히 싱글벙글 신이 났다. 먹고 놀 생각에 신이 난 나와는 달리 아빠는 비가 내려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무료한 듯 핸드폰만 들여다 보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 비가 그친 사이에 뒷마당에 사부작사부작 또 뭔가를 시작하셨다.

비닐하우스 보수공사


온실 지붕 보수공사!

겨우내 눈이 내리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질까 봐 튼튼하게 비닐하우스 프래임 보수 공사를 하고 계셨다. 이렇게 정성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제발 내년에는 이곳에 푸릇푸릇 많은 야채들이 수확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여름내 씨를 심고 가꾸어도 가을이 되면 수확할 게 없었던 나의 초라한 비닐하우스가 이번에 새로 업그레이드된 만큼 내년에는 이웃들에게 나눠줄 만큼 제구실을 다 해줬으면 좋겠다.


혹여나 비가 다시 내릴까 아빠는 서둘러 다음 보수공사에 착수하셨다.

5년 전 코코(우리 집 첫 강아지)가 탈출을 위해 구멍을 냈던 뒷문을 막아주셨다. 흉찍하게 뚫려있던 구멍이 감쪽같이 메꿔졌다. 뒷문을 수리하는 동안 집 외벽 시멘트가 떨어져 나간 곳이 또 아빠의 레이다망에 걸려들었다. 조만간 비가 그치면 다음 목표물이 될 것 같다.

아마도 이쯤이면 우리 집 신랑은 참 게으른 사람이겠거니... 생각이 들것이다.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쉬는 날 없이 일하는 신랑은 게으르기도 하지만 그 게으름까지도 사치일 정도로 일에 치여 사는 사람이다.

불쌍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다.



요리하는 아빠

파마스 마켓에서 사 온 양배추가 여간 신통방통한 게 아니다. 양배추를 쪄서 먹어도 식감이 부드럽고 맛까지 달콤한데, 생으로 먹어도 아삭아삭 꼭 상추를 먹는 것 같다. 열심히 먹었는데도 아직 냉장고에는 2/3가 남아있다.

오늘의 주요 메뉴는 알버타 AAA소고기 스테이크다. 그런데! 아빠의 특재 양념소스로 버무린 양배추 무침이 너무 맛있어서 소고기는 찬밥신세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한동네에 사시는 엄사장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송이버섯구이까지 식탁에 오르니 소고기는 아예 누구의 눈에도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기다리는 순간은 바로 달콤한 케이크와 커피 한잔의 여유니까.

자연산 송이버섯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저녁 시간이 되니 빗줄기가 굵어졌다. 식사 후 아빠는 사위와 에드먼튼 지도를 펴놓고 토지개발에 대한 토론이 펼쳐졌다. 도시 외곽지역 투자목적으로 5000평 정도는 땅을 사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대화 속에서 벌써 몇 번은 땅을 사고 또다시 팔고 있는 것 같다. 현실성 있는 이야기라면 이 순간 얼마나 행복하고 흥분될까? 정말 우리 모두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면 좋겠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언제든 놀러 와서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그런 곳,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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