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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금요일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Day14> 10월 4일


아빠와 함께한지 벌써 2주가 되었다.

2주 만에 처음으로 나 혼자 집에 있는 날이다. 또 막내딸의 첫 배구 경기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2시간 넘게 떨어진 whiterock에서 진행되는 경기여서 선수들의 스쿨버스가 새벽 6시 30분에 출발 했다. 올림픽 선수 배웅하듯 온 집안 어른들이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서로 대려다 주겠다고 대기 중인 해프닝도 벌어졌다. 웃겼지만 조용하고 행복한 호들갑이었다.

가족들에게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다. 딸아이도 지금의 이 순간이 행복임을 알고 있겠지? 아이가 살아가면서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이런 작은 기억들이 든든하게 마음을 잡아줄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새벽부터 서둘렀더니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7시쯤 아침을 먹고 아빠, 나 그리고 신랑이 식탁에 둘러앉아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져본다. 워낙에 많은 시련과 시험을 당하셨던 터라 아빠는 늘 외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 대한 걱정이 많으셨다. 자연스럽게 교회이야기로 시작해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까지 들어가는 것 같아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요하면서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야 할 부분인 것 같아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이들의 아빠로서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자리를 비켜드렸다.

아빠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은 절대 내가 잘나서가 아니야. 할머니의 기도, 아버지, 어머니, 장인 장모님의 기도 때문인 거지."라고 말이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는 넉넉하지도, 그다지 평안하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어린 나에게 말씀하셨던 똑같은 이 맨트로 신랑과의 대화를 시작하셨다.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캐나다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한순간도 우리의 의지대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부모님의 기도로 우리가 행복하게 웃으며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늘부터는 금요일부터 주일까지 3일 연속으로 에드먼튼에서 공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오전이 다 지나가기 전에 부랴부랴 짐을 챙겨 아빠와 신랑이 에드먼튼으로 향했다. (오늘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이유다). 갑자기 집안이 조용하고 허전해졌다. 아빠가 안 계셨을 때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잠깐 당황스러웠다. 인간이란 참 적응이 빠른 동물이다. 어색한 듯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궁금증이 생겼다.

'두 남자는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갈까?'

'서로 어색해하는 건 아니겠지?'

칭찬과 인정에 인색한 시아버님과의 대화는 무거운 분위기와 함께 마무리될 때가 많았다. 아버님과의 대화는 늘 젊었을 때 고생했던 시절과 과거 속상했던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론은 "지금 이 순간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다 부질없는 일이다."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확실히 아빠와의 대화는 다르다. 어렵지만 행복하고 감사했던 시간들로 시작해서 앞으로의 우리 모습과 성장하는 아이들에 대한 기대와 축복으로 대화가 마무리된다. 언젠가는 아버님과도 이렇게 함께할 시간이 올 텐데 그때 나와 신랑은 아버님과의 대화를 아빠처럼 긍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그래야만 한다. 우리가 행복하고, 아버님이 행복하고 또 우리 아이들이 축복받기 위해서 나와 신랑이 풀어야 할 가족 간의 숙제이다.




아빠의 무한한 극찬과 오버 리액션 덕분에 2주 동안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것 같다. 어린아이처럼만 보였던 철부지 아들도 아빠의 눈을 통해 다시 보니 이렇게 의젓하고 가슴 벅차도록 든든해 보일 수가 없다. 매일 아침 어떤 말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떤 기대와 눈빛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확실히 그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아빠가 한국으로 가신 후에 아이들은 분명 자신들을 향한 할아버지의 든든한 사랑의 눈빛과 집안 분위기를 그리워할 것이다. 대가족으로 함께 사는 아이들이 매사에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건 바로 이런 조부모님으로부터의 무한신뢰와 사랑 때문임이 분명하다. 평소와 같은 금요일을 되찾았지만 오늘하루는 많이 허전하고 심심한 하루가 될 것 같다. 두 남자들의 데이트가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으로 채워지길 기대해 본다.



<에드먼튼 공사 3일 차>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할 나를 위해 아빠는 실시간 사진으로 계속 업데이트를 해주셨다.

타일 보수

가장 저렴하고 깔끔한 타일을 골랐다. 타일을 자르는 기계는 홈티퍼에서 저렴한 가격에 빌릴 수 있다고 한다. 능숙한 전문가처럼 타일도 아주 잘 자른다며 신랑을 향한 아빠의 칭찬이 대단하다. 우리 신랑은 손이 빠른 사람이 아니다. 옆에서 보조하기에 아빠가 엄청 속이 터졌을 것 같은데 이쯤에서 아빠가 다시 한번 존경스러워진다.




한국에서는 고모의 마지막 생일파티를 하셨다고 사진을 보내오셨다. 마음껏 기뻐할 수만 없는 생일파티 였겠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한 마지막 시간은 고모에게 가족모두에게 감사였을것 같다.




엄마 결석에 드디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조각이 3개가 나왔다고 한다. 제발 통증 없이 걸리는 곳 없이 다 부서져 쏟아지기를!!!




고3인 아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University of Alberta 엔지니어링 학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이다. 모두가 함께였다면 파티라도 했을 텐데 하지만 한국, 에드먼튼, 에슨 각자 있는 자리에서 진심으로 손뼉 치며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모두가 모이는 주일저녁 케이크이라도 잘라야겠다.

아빠가 계셔서 모든 게 술술 잘 풀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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