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15> 10월 5일
2일 만에 부엌 타일 완성!
힘차게 하이파이브로 마무리하는 두 남자의 얼굴에 안도감과 즐거움이 가득해 보인다.
에드먼튼에 나올 때마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오늘은 공사뿐만 아니라 신랑과 내가 검안의를 만나는 날이기도 했다. 일 년에 한 번 시력검사를 받는 날이다. 부엌도 끝났겠다 모처럼 온 가족이 외식을 해야겠다. 에드먼튼에 오기 위해 아침도 못 먹고 고속도로를 달려왔더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틀 동안 두 분이서 재미있으셨나 보다. 에드먼튼 사우스로 내려가는 동안 이야기꽃이 피었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검안의를 만나고 상담하는 시간까지 1시간을 예상했는데 2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빨리 점심을 먹고 다시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제는 오후 4시만 조금 넘으면 해가 지기 때문에 더 이상 작업을 계속할 수가 없다. 깜깜해진 실내에서 전등과 램프의 불로 공사를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 세상 바쁜 것 없이 느긋한 신랑은 "그래도 밥은 제대로 먹고 들어가자"라며 한식당으로 차를 돌렸다.
식당에 가면 아빠는 메뉴를 잘 고르지 못하신다. 메뉴보다는 가격이 먼저 들어오기 때문이다.
"뭐야? 칼국수 한 그릇에 18000원이라고?"
"이게 제일 저렴한 메뉴야?"
에드먼튼에서는 햄버거를 먹어도 같은 가격이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한국과 비교해서 터무니없이 비싼 음식가격에 도무지 식당에 가려고 하지 않으신다.
"이제 외식은 하지 말자. 식빵에 쨈 발라먹고, 계란프라이 먹으면 되지!"
아빠가 선언 아닌 선언을 하셨다.
오늘도 우리의 자재쇼핑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갈 때마다 항상 새로 구입해야 하는 공구가 생기는 것 같다. 이제 홈디퍼 직원들의 얼굴도 익숙해졌다. 그들도 아마 어리버리 구석구석을 보물 찾듯이 뒤지는 우리의 모습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벌써 오후의 반을 보내고 말았다. 이제 정말 오늘 하루 공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4시간도 채 남지 않은 것 같다. 정신 차리는 데는 아이스캡만 한 것이 없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듯이 우리는 팀홀튼 드라이브웨이를 거쳐 집으로 향했다.
아이스캡으로 정신바짝 차린 뒤 모두 다시 작업 시작!
오늘의 작업은 집 문과 문지방 그리고 문틈 사이에 벌어진 곳을 메꾸는 작업이다. 도대체 문 사이즈를 어떻게 재고 설치를 했는지 모든 문과 벽사이에 보기 싫게 공간이 벌어져 있다. 우드 필러라는 재료로 공간을 채워보려 했으나 이 튜브 하나로는 한쪽 모서리의 1/10도 채우지 못하고 손의 힘만 낭비하게 생겼다. 조금 더 검색하고 연구해서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다시 홈티퍼로 향했다. 바닥시공을 하기 위한 공구를 사기 위해서다. 검안의를 만날 때부터 너무 신경을 많이 썼는지 난 일도 하지 않았는데 피곤해서 서 있을 수가 없다. 바닥 재료를 구입하는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 이제는 홈디퍼 구석구석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알 것 같다.
'장 보는 것보다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몸이 덜 피곤할 것 같아.'라고 이야기한다면 남자들이 섭섭하려나?
오늘은 진도 나간 것도 없이 재료비만 600불을 넘긴 것 같다. 나와 신랑의 속상함을 읽으셨는지 아빠가 더 화를 내시며 말씀하셨다.
"재료비가 나갈 때마다, 막일로 몸이 지칠 때마다, 5천만 원을 양심 하나 없이 꿀꺽 삼켜버린 그 자식들에게 욕이 절로 나온다! 나쁜 xx들."
"내가 이렇게 욕이 저절로 나오는데, 너희들 마음은 오죽하겠니!"
오늘은 정말 손에 먼지하나 묻히지 않고 발품만 팔았던 하루였다.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다. 늘 규칙적이고 올바른 습관을 만들기 위해 스케줄대로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나지만, 배꼽시계만큼 습관이 잘 들어있고 정확한 건 없는 것 같다. 영어공부 하는 시간, 책 읽는 시간은 왜 이렇게 습관이 되지 않는지...
저녁으로 포(베트남 쌀국수)를 먹고 할 일이 가득한 집으로 돌아왔다. 그냥 씻고 빨리 잠자리에 들었으면 좋겠지만, 내일 바닥작업을 빨리 진행하기 위해서 래미네이트 절단기를 조립해 놓고 자자는 아빠의 말씀에 우리는 거실에 모였다.
"조립정도야 어른이 셋인데 가볍게 30분 안에 끝내주지!"모두 자신만만하게 말이다.
"설명서 없이도 따악!!! 모든 걸 조립하던 나라고!" 신랑도 의기양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조립이 절대 쉽지 않았다.
그리고 2시간 만에 조립 완성!
너무 피곤하다.
오늘은 누가 업어가도 모를 것 같이 잠이 들 것 같다.
굿 나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