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29> 10월 19일
일출이 예쁜 아침. 아이들과 함께 에드먼튼으로 출발했다. 큰아이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린다며 학교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와 잔칫집처럼 북쪽 거리는 하루였다. 아이들 뭐라도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빠른 속도로 냉장고 속에 있는 음식들을 스캔했다. 다행히 코스코에서 사 온 불고기와 샐러드가 있다. 서양인들에게 이미 유명한 한국 음식 불고기 덕분에 제법 만족스러운 점심을 차려 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하는 말.
"이 불고기 코스코에서 사신거지? 오! 정말 맛있었어. 우리도 다음에 장 볼 때 이거 사자!"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이라고 속일 생각은 없었지만 너무 훤하게 꿰뚤어보는 아이들 대화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내가 직접 만들었다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나?
오늘의 작업은 바닥 몰딩이었다. 정확한 공구 이름을 모르겠지만 못을 박아주는 총을 구입했다. 난 망치총이라고 부른다. 처음으로 총을 든 신랑은 무릎을 꿇고 앉아 몰딩위로 총을 쏘기 시작했고, 신랑의 뒤를 따라 아빠는 작은 망치(사실 망치가 없어서 밴치 같은 걸 사용하셨음)를 사용해서 미처 다 들어가지 않고 튀어나온 못을 깔끔하게 박아 넣으셨다. 사위 뒤로 나란히 함께 무릎을 꿇고 말이다. '장인어른과 베짱이 팀'의 뒷모습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경건한지 물어보고 싶은 말을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저기.... 이거 총말이야. 원래 한번 쏘면 그냥 딱! 박혀야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뒤로 쫓아다니면서 다시 박아줘야 하는 거면 왜 총을 쏘나? 그냥 망치로 박으면 되지?'
조용한 집안에 "탕! 탕! 탁탁탁" 하며 총소리와 망치소리만 울려 퍼진 체 나의 물음은 마음속에서만 맴돌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일이 마무리되어 갈 때쯤 총을 잡은 자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챘다고 한다. 제대로 힘을 주고 쏘게 되면 아주 깔끔하게 못이 들어가 아빠가 무릎을 꿇고 따라다니면서 망치질을 하지 않으셔도 됐던 것이다.
"자네 나 엿 먹이려고 일부러 그랬나?"
"윤서방이 잘못했네요!"
이렇게 마무리된 아빠와 신랑의 농담으로 두 분은 박장대소를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들이 진행하는 공사에 실수가 없으면 이상한 공사다. 하지만 이런 실수를 서로 웃으며 즐거운 추억으로 만들어 간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지난주에 모든 낙엽을 싸악 청소해서 버렸는데, 오늘 아침에는 그날 보다 더 많은 낙엽이 내려와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가 이 광경을 보고 너무 속상해하셨다. 열심히 치웠는데 얼마나 허무하셨을까.
'거봐! 아빠. 내가 치우지 말라고 했잖아요... 낙엽 엄청 떨어진다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더 속만 성하실 것 같아서 입국 다물고 있었다.
"어허! 참나... 가짢치도 않다!"라는 말을 반복하시며 속상해하시는 아빠를 보니 예쁘다고 좋아했던 단풍잎들이 이제는 얄밉게만 보인다.
청소를 안 하는 자들에게는 예쁜 단풍잎이요, 청소하는 자들에게는 얄미운 단풍잎들이었구나!
작은 아이들 둘만 에슨 집으로 먼저 떠났다. 혼자 운전을 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하지만 처음으로 아아들만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날이다. 하지만 뿌듯한 마음이 불안한 마음을 다독인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듬직하게 커서 동생을 데리고 혼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다니! 감격이다!
공사현장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다. 따뜻한 밥으로 끼니를 차려드리고, 달달한 간식과 과일로 떨어진 당을 보충해 드리는 게 나의 몫이다. 쉬엄쉬엄 하시라고, 마스크 끼시라고, 틈틈이 잔소리를 곁들여서 말이다.
내일도 우리 모두의 몫을 잘 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