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 31> 10월 21일
첫눈이 내렸다. 아빠와 함께 겨울을 맞이했다. 오늘은 마음이 조급하고, 우울하며, 불안하고, 좌절되며, 아무런 희망도 생기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막내 동생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상의할 일이 있어. 일어나면 톡줘."
느낌이 좋지 않다.
엄마의 결석 수술비 때문에 1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보험이 없어서 우리가 서로 부담해야 한다는 걱정 가득한 내용이었다.
'대단하고 위험한 수술도 아니고 결석 시술비 때문에 이렇게 세상 큰일이 난 것처럼 진지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짜증과 우울감이 밀려왔다. 지금까지 다니시던 병원을 옮길 계획이라고 했다. 왜 병원을 바꿔야 하는지 대충 설명은 들었지만 그것 또한 엄마의 생각인지 딸들의 생각인지 알 길이 없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많이 배려한다. 너무 배려를 하는 통에 마음속 진짜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상대방이 걱정할까 봐, 상처받을 까봐 생각하고 고민하고 정리해서 남긴 메시지와 대화들은 결국 정확한 서로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매번 실패한다.
'괜찮아. 걱정할 일 아니야. 시술비 내가 보냈어' 문자확인 후 동생에게 시술비를 보냈다. 시술비를 걱정해야 할 만큼 우리 세 자매가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게 자괴감이 들고 화가 났다. 우리 세 자매가 서로 의사소통이 안된다는데 화가났다.
나이 드신 부모님께 우리 세 딸은 얼마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딸인가 생각해 보니 부끄럽고 속상했다.
오늘도 난 비행기 티켓팅 사이트와 호텔 사이트를 오고 가며 고민을 하고 있다. 아빠와 밴쿠버를 다녀와야 하는데 날짜를 도통 정할 수가 없다. 주말에 다녀오려니 비행기값과 호텔값이 만만치가 않다. 고모할머니댁에 신세 지고 싶지 않으시다고 하셔서 호텔 잡을 거라고 호언장담 했지만 언제 밴쿠버 호텔가격이 이렇게 올랐던가? 비행기값을 절약하고 운전을 해서 다녀오자니 그것 또한 현명한 선택이 아닌 것 같다. 눈과 얼음으로 단단하게 화가난 고속도로를 10시간이나 넘게 달려야 하는데, 이미 공사로 지쳐있는 신랑과 아빠게는 힘든 여행이 될 것 같다. 분명 다녀온 뒤 누구 하나는 몸살이 날게 뻔하다. 그리고 그 누구 하나는 분명 내가 될 것이다. 알버타와 밴쿠버가 이렇게 먼 곳이었나?
역시 나쁜 소식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10월은 집보험을 연장해야 하는 달이다. 이번 집 공사로 인해 집보험이 비 상식적으로 많이 올랐다. 결국 보험회사를 바꾸기로 결정하고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신청했던 보험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집 클레임이 한 번이 아니라 3번으로 나뉘어 저 기록이 되어 있어서 다른 보험회사에서 받아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보험회사를 옮기지 못하게 하고 우리에게 돌려준 금액만큼 보험비를 올려 받겠다는 이야기로 해석이 되었다. 보험 문제 때문에 하루종일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방법을 찾아보았다.
아빠는 오늘 집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셨다. 밖에 산책을 할 수도 없고, 일을 할 수도 없으셨다. 하루종일 내 옆에서 나의 어둡고 우울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내셔야 했다.
아빠...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