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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열세 번째 날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Day 30> 10월 20일


집 창문 앞에 커다란 Cider 나무를 잘랐다. 아무래도 집에 가까이 있는 나무들은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잎이 떨어져서 홈통을 막기도 하고 지붕에 떨어지면 이끼가 생겨 집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늘 생각만 하고 있었지 대책이 없었는데 아빠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나무의 상단부부만 잘라내기로 했다. 이렇게 상단만 잘라내면 나무 전체를 제거하는 게 아니니까 시청에 신고와 허가를 받을 필요도 없고 낙엽들은 지붕에 떨어지지 않으니 이 얼마나 기발한 생각인가!


조금이라도 가볍게 사다리에 올라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아빠가 사다리에 오르셨고 힘이 좋은 신랑은 나무에 고정된 끈으로 중심을 잡았다. 이제 몇 년은 거뜬하게 지붕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무 전정



문과 벽사이의 보기긿은 빈틈만 채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벽과 몰딩의 빈틈도 채워야 한다. 우드필러라는 자재로 채워 넣는 일을 했다. '물감처럼 튜브를 쭈욱 짜서 채워 넣으면 끝!' 역시 유튜브 영상은 모든 일이 아주 쉬워 보이는 문제점이 있다. 튜브를 짜는데 엄청난 힘이 필요했다. 한 면을 끊기지 않고 한 번에 짜는 건 더 어려웠다. 자신 있게 하겠다고 손을 들었는데 방 한 개도 끝내기 전에 속이 울렁거리고 손도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슬그머니 지하로 내려와 침대에 누워버렸다.

난 한 시간도 안 했는데 쉬지도 않고 하루종일 일하셨던 두 분은 얼마나 고됐을까?

생각만큼 일이 빨리빨리 진행되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했던 일들이 죄송해졌다. 나와 마찬가지로 지금 '장인어른과 베짱이 팀'은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쉬는 시간도 없이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틈틈이 간식과 커피타임으로 강제 휴식을 만들어야겠다. 이게 가장 건강하게,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쉽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우드필러작업

화장실 세면대 밑, 창고 안, 캐비닛 밑 등 잘 보이지 않는 곳은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래미네이트를 깔다가 만 나쁜 xx들!

일을 하다 보니 욕을 안 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눈에도 이건 아니다 싶다. 우리는 포복 자세로 라미네이를 잘라 눈에 보이는 모든 틈새를 메꿨다. 왜 이런 사소한 것에 하루를 모두 소비해야 하나! 사기꾼들 때문에 이 고급인력들의 귀한 시간이, 우리 가족들의 소중한 시간이 소비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빈공간 메우기





집에 혼자 있는 아이들이 마카롱을 만들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이번 마카롱은 제법 동그랗게 모양을 갖춘 것이 맛있어 보였다.(아들은 여러 번 마카롱 만들기를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였다.)

"어! 마카롱이네! 이거 쭌이가 좋아하는 건데!"

아빠는 한국에 있는 어린 손주가 생각나셨나보다.


기특한 아이들.

미안하고.

고맙다.

홈메이드 마카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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