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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열네 번째 날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Day 35> 10월 25일


오늘은 금요일이다. 이번 주는 우리 가족이 예배반주팀이라 주일까지 에드먼튼에 머물러 공사를 할 수 없다. 하루 일찍 떠난 '장인어른과 배짱이팀'은 아침 일찍부터 작업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에드먼튼 카메라 알림이 연신 딸꾹질을 해데며 남자들의 이동을 보고하고 있다.


아침에 신용카드납부를 하고 영수증 정리를 했다. 아침나절에 통장의 돈 반이 사라졌다. 마법 같다. 통장에 돈이 모이기까지 그렇게도 힘들더니 어쩜 나갈 때는 이렇게 매정하게 빠져나가는 걸까? 에드먼튼 수리비와 집보험이 나간 흔적이 너무나 깊고 선명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내역을 확인하고 파르르 떨리는 손과 가슴을 부여잡고 혹시나 은행실수로 계산이 잘못된 건 아닌지 계산기를 두드리는 내가 한심해 보인다. 은행이 실수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빠가 오시고 34일 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의 현실이 차갑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생각정리가 필요했다. 나의 이런 우울하고 조바심 나는 생각이 아빠와의 시간을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토닥이며 마음을 잡아본다.




막내딸의 배구경기가 있는 날이다. 오늘의 경기는 Mayerthorpe이라는 우리보다 더 작은 시골마을에서 열린다. 1시간 30분이나 떨어진 거리지만 혼자 오디오 북이라도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킬 겸 고속도로에 몸을 실었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경기에 임하는 아이들을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빠도 보셨으면 엄청 좋아하셨을 텐데...

고생하시는 '장인어른과 배짱이팀'생각나는 순간이다.




모든 순간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는 것 같다. 이번 캐나다에서 아빠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시간과 돈에 쫓겨 내몰리듯 보낼 수는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속에서 혼자 생각이 많아졌다.

오늘은 에드먼튼도 햇살이 좋았나 보다. 아직 밖에서 해야 할 작업들이 남았는데 춥지 않게 일할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오늘로써 실리콘 작업을 모두 마무리하셨다는 자랑 가득한 문자가 도착했다. 물론 실리콘총을 또 들어야 하는 상황이 당연히 나오겠지만 힘든 작업 가운데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두 분께 기립박수라도 보내드리고 싶다.

"이제 페인트만 칠하면 돼!"

음.... 정말일까? 정말일 거야... 정말이어야 한다.

늦가을 마지막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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