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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드라이브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Day 39> 10월 29일


어제 내린 눈 덕분에 예쁜 눈꽃나무가 생겼다. 겨울에만 감상할 수 있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아빠가 보실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아빠에게 헬스장 멤버십을 끊어드리기 위해 외출을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두 시간 이상씩 운동을 하셨던 분이 벌써 한달 가까이 운동을 하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아빠는 알아서 운동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숨쉬기 운동은 운동이 아니요, 노동이 운동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헬스장 분위기가 좋지 않다. 새벽 2시쯤 수도관에 문제가 생겨서 헬스장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직원들은 열심히 운동기계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여주인은 바닥의 물을 닦아내며 언제 다시 오픈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며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국 아빠는 핼스장을 가실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너무 게으름을 피웠던 탓일까? 매끈하게 운동으로 단련된 아빠의 몸이 여기 계시는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것 같아 죄송하다.





집에서 쉰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아빠는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을 찾으신다. 오늘도 점심 후 공항 산책을 나갔다. 물론 겨울 파카를 입기는 했지만 따뜻한 햇살 덕분에 춥지 않은 산책길이었다.

산책길 대화의 주제는 동생들이었다. 동생들이 한국이 아닌 캐나다에 정착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신 것 같다. 또 아빠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캐나다에서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이제는 부모님이 원한다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어린 자식들이 아니기에 아빠의 생각과 바람이 동생들에게 전해질 리가 없다. 게다가 2024년 지금 캐나다는 이민정책의 변화로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포기하고 역이민을 하는 분위기다. 이민의 문턱은 과거 전례 없이 높아지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때문에 이민을 꺼려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생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가 다시 열정을 쏱아부을 수 있는 작은 비즈니스라도 시작하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바람을 갖는 우리들은 욕심쟁인 걸까?

겨울꽃나무




10월 31일은 할로윈이다. 할로윈이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동네도 마트도 온라인 광고도 할로윈 데코레이션으로 가득하다. 이런 할로윈 문화는 아빠에게 아주 재미있고 새로운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할로윈 당일에는 워낙 이동하는 차량도 많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도 많기에 우리는 오늘저녁 할로윈 데코레이션 구경을 위한 드라이브를 나가기로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할로윈 전날밤 잠옷을 입혀서 각자 손에 핫초콜릿 한잔씩을 들리우고 차를 타고 타운 구경을 하곤 했었다. 아빠와 이집저집 멋지게 데코레이션을 한 집들을 찾아 무작정 차를 몰고 타운을 돌며 아빠의 반응을 살폇다. 아빠가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할 때마다 맛있는 캔디를 하나씩 얻어먹은 것처럼 나도 덩달아 신이 나고 웃음이 났다.

자동차 창문에 딱 붙어서 소리를 지르며 신기해하던 아이들의 어릴 때 모습이 생각난다. 이제는 남편도 아이들도 이런 자동차 드라이브가 시큰둥 하기만 한데 말이다.


할로윈 드라이브


"이야! 이거 대단한데! 멋지다! 아주 대단한 구경이네!"

"아이고! 장로님! 왜 이리 싶니까!!!"

"난 신세대 장로야~!"

아빠 카메라에 담긴 귀신들의 화려하고 으스스한 사진들이 오랫동안 아빠에게 큰 추억이 될 것 같다.




고모할머니는 하루하루 암투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할머니의 자녀들도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 숨을 힘들고 안타깝게 붙들고 있는 부모를 바라보는 심정이 얼마나 아프고, 괴로울까?

삶과 죽음사이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부모님을 보면서, 회사를 가고 아이들을 돌보고 돈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그 시간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 견디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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