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40> 10월 30일
아침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풍겨오는 찌릿한 냄새! 분명 김치 냄새였다. 냉장고에 김치가 다 들어가지 않아서 주차장에 보관하고 있었다. 아빠가 컨테이너에 꽉꽉 눌러 담으실 때부터 설마 터지는 건 아닐까 잠깐 염려가 스치기는 했지만 이렇게 하루아침에 폭탄 터지듯 터질 줄을 몰랐다. 짜증이 날일도 화를 낼 일도 아니었지만 괜히 내 마음속도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빠 탓이 아니건만 내 말투에는 이미 원망과 짜증이 묻어있었다. 아빠가 많이 섭섭해하셨을 것 같다. 나이 50이 다 되어 가도록 왜 부모님 앞에서는 늘 이렇게 어린아이가 되는 걸까? 아빠가 느끼셨을 그 섭섭한 마음을 다시없던 것으로 돌릴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난 또 후회할 짓을 해버리고 만 것 같아서 속상하고 죄송했다.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나의 마음도 좁아지는 것 같다. 한국에 보낼 선물들을 생각하니 또 고민이 밀려온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아빠가 힘들지 않게 한국까지 가져가실 수 있을까?
아빠의 시선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는 것 같다. 아빠는 순간순간 나를 계속 사진에 담으신다.
화려하게 따사로운 햇살이 없어지기 전에 서둘로 윌모어 파크에 갔다. 눅눅해진 낙엽의 냄새와 신선한 공기, 졸졸졸 조용히 흐르는 냇가의 물소리. 그 외에 바스락바스락 눈 위를 걷는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우리는 또 상황버섯을 발견했다. 몇 년을 산책 다녀도 보이지 않던 상황버섯 군집을 발견했다. "심봤다!!!" 버섯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붙어있는지 손의 힘 만으로는 도저히 때넬 수가 없다. 물론 사유지가 아닌 공원에서 버섯을 떼어가는 건 불법이다. 아빠가 있는 힘껏 매달려 보지만 버섯을 향한 우리의 욕심과 열망만 불타오를 뿐이었다.
할로윈 행사로 아이들과 아빠와 함께 잭 오 랜턴을 만들고 싶었다. 매년 해왔던 작은 이벤트 이기도 하고 아빠께도 새롭고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 같았다. 머리만 한 크기의 큰 호박이 3-4불이면 쉽게 살 수 있었는데, 게다가 마트마다 차고 넘쳤던 그 호박들이 다 어디로 간 건가? 타운에 마트를 다 뒤져봐도 손바닥 만한 호박도 구입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Ford대리점에서 할로윈 행사를 진행하고 남은 호박 두 덩이를 무료로 받아올 수 있었다. 문 앞에 놓아둔 노란 호박 덕분에 집이 더 환해졌다.
레슨이 늦게 끝나는 이유도 있지만 요즘 아빠가 저녁식사를 담당하실 때가 많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니 기분이 좋으시다며 아빠도 기쁜 마음으로 식사당번을 자처하셨다. 오늘은 아빠가 가장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세 가지 음식 중 두 번째 두 번째 떡볶이다. (첫 번째는 지난번에 맛보았던 손칼국수!) 레슨 하는 내내 얼마나 맛있고 매혹적인 냄새가 온 집안에 풍기는지 참느라 혼이 났다. 아빠의 음식에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모두 감자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떡볶이에 감자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매콤한 국물 속에 타박한 감자의 맛이 아주 별미였다. 아빠 음식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바로 양파이다. 양파가 많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양파의 행방을 알 수 없다. 아빠의 그 커다란 손이 어떻게 양파를 그리도 야무지게 다지실 수 있는지 아직도 미스터리지만 오랜 시간과 정성으로 작게 다져진 양파가 요리 속에 들어가면 아무도 양파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다. 양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와 나를 닮은 딸에겐 최고의 음식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