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 43> 11월 2일
아침부터 에드먼튼을 향하고 있다. 안개가 가득하고 살얼음으로 덮여있는 고속도로는 본능적으로 운전대를 더 꼭 쥐게 만들었다. 이제는 에드먼튼으로 가는 길이 쉬워질 것 같지 않아 걱정이 앞선다. 이런 걱정은 또 '빨리 공사가 끝나야 할 텐데...'라는 조급증으로 번저가는 걸 알기에 딴생각을 없애려고 오디오 북을 연다.
에드먼튼에 도착했지만 집으로 바로 가지 못했다. 기숙사에 있는 딸아이에게 보낼 간단한 장을 보고 잠깐 기숙사에 들려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둘러보았다.
아픈 곳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는지?
어쩌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 손길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걸 해주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다. 아마 아빠도 나와 똑같은 심정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곳에서 힘든 노동을 하시면서도 늘 행복하게 웃고 계신 이유일 것이다.
친구가 일하고 있는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이민생활에서 누군가와 오랫동안 친구가 된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민사회에서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된다. 서로 외롭고 의지할 곳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쉽게 마음문을 열고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작은 섭섭함이나 오해로 인해 우리는 또 금방 원수가 된다. 늘 내편이 되어주기를 바랐건만 내 마음을 이해해 줄 거라 믿었건만 아주 작은 섭섭함이 커져서 결국은 다시는 얼굴도 안 보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다.
나의 오랜 친구는 주방에서 우리 가족을 위해 정성으로 음식을 담아내었다. 국물보다 고기가 더 많은 국밥, 해물이 가득 찬 파전 그리고 마지막 음료수 서비스까지! 이 많은 음식을 뱃속에 다 담지 못할 만큼 우린 정성이 가득한 식사 대접을 받았다. 아빠는 늘 한국에서도 친구의 안부를 물으셨다. 나와 동갑내기인 친구가 전혀 남같이 느껴지지 않으셨던 것 같다. 이제는 평안한 웃음이 친구의 얼굴에 번지는 걸 확인하시고 아빠도 기분이 좋으셨나 보다.
도시 운전은 적응이 안 된다. 시골에서 여유롭고 자유롭게 운전을 하다가 에드먼튼에 오면 다시 초보 운전자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차들이 양보 없이 미친 듯이 질주하며 자기 갈길만 보고 나아간다.
"너희가 알아서 비켜라! 나는 내 갈길 가련다!"
오늘은 본격적인 페인트 작업이다. 페인트 작업에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석고마감된 천정이 무서운 속도로 페인트를 빨아들여 속도를 낼 수 없었던 점. 게다가 크고 무거운 브러시를 머리 위로 들어 천정을 칠하려니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신랑이 계속 이야기해 왔던 "브러시로 몇 번 슥슥 문지르면 끝나!"와는 완전 다른 작업이었다. 아빠가 처음으로 백기를 드셨다.
"페인트 칠하다가 사람 잡겠다!"
전날 붓으로 칠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는 걸 판단한 남자들은 스프레이 기계를 사 왔다. 온 집안을 다 칠하고도 남을 거라던 5 갤론 페인트와 함께, 우리는 야심 차게 페인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작업 또한 유튜브 영상에서 보는 것 같이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연습 삼아 방 한 개를 칠해보았다. 바닥에 대충 비닐을 깔기는 했지만 바닥에 떨어진 페인트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건 나뿐인 것 같다. 아주 작은 점으로 전체적으로 바닥에 분사가 되어 떨어진 페인트를 어떻게 지워야 하나?
남자들은 오늘도 내 눈치를 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 끝났어! 이제 다 끝났어! 아주 좋아!"
도대체! 어디를 봐서!
강제휴식이다. 내가 보기에도 페인트 작업은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정말 아빠 말씀대로 이러다 두 사람 다 잡을 것 같았다.
내일 우리들의 작업을 위해 오늘은 이만 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