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 42> 11월 1일
아침 10시.
아침부터 반가운 방문객이 오셨다. 아이들이 모두 등교한 후, 집은 조용하다 못해 무섭도록 적막했다. 토요일 에드먼튼행을 위해 미리미리 화장실 청소를 해두었다. 물론 오디오 북을 들으며 말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빼곡히 적으며 '맞다. 이게 내 일상이었지.'라고 새삼 깨닫는다. 아빠와 함께하는 40일의 시간 동안 나의 일상도 많이 변했다. 아침부터 알아듣지도 못하는 경제 뉴스를 들으며 쓸 때 없는 한탄에 빠지는 일도 없어졌고, 유튜브를 뒤적거리며 빨리 돈 버는 법을 찾는 허무한 시간도 없어졌다. 날이 좋으면 아빠와 함께 밖으로 나갈 생각에 행복했고, 날이 흐린 날에는 어떤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즐거움이 생겼다. 무엇보다 집안에 어른이 계신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오신 이후 단 한 번의 싸움이나 큰소리가 난적이 없다. 심지어 아이들까지 투닥거리는 일 없이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이 아빠의 존재와 또 희생 때문이다.
사실은 두렵다.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나면 그 큰 빈자리를 우리는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만 남겨질 그 시간이 생각만 해도 두렵고 외롭다. 홀로 남겨진 우리는 차갑고 매정하고 날카로운 세상을 바라보며 또 서로 지치고 후회하고 어쩌면 서로를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장인어른과 베짱이 팀'은 오늘 드디어 페인트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한걸음에 달려가 한 번의 붓칠이라도 돕고 싶은 심정이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에서 비장함과 고단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엄지를 척! 들고 "걱정 마! 우리 아주 잘하고 있어!"라고 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분명 페인트 작업을 한다고 했는데 이토록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유는 바로 샌딩 때문이다. 문틈, 즉 문과 기둥사이에 공간을 필러로 메꿨기 때문에 페인트를 칠하기 전 매끈하게 갈아 주어야 한다고 한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전문가분이 계시다면 "어이구, 사서 고생을 하는구먼! 저렇게 까지 안 해도 되는데"라고 하시며 답답해하실 수도 있겠다.
아마존에서 구입한 특수 마스크가 아주 큰일을 한 하루였다. 결국 오늘도 계획만으로 끝났던 페인트 작업이었지만 두 분의 표정이 밝은 걸 보니 샌딩작업이 아주 만족스러우셨나 보다. 오늘도 애쓴 장인어른과 배짱이 팀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