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 44> 11월 3일
아침 일찍 우리는 본격적인 페인트 작업에 들어갔다. 테이핑 작업이 만만치 않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계속 반복해하는 작업에 나도 물론이거니와 아빠에게도 무리가 될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공사를 하면서 한 번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아빠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 남자들의 숨소리가 무척이나 거칠었던 하루였다.
3시간이 지나니 배고 고프기 시작했다. 먼지를 배부를 만큼 먹은 것 같은데 신기하게 배가 고팠다.
한국장에서 급하게 들고 나온 냉동 핫도그와 과일들이 우리의 감사한 세참이 되어주었다.
두 사람의 초 긍정적인 대화가 오고 가는 따뜻한(?) 간식시간이다.
"이제 급한 건 다 끝났다."
"이건 식은 죽 먹기지!"
"이제 다 끝났다"
온 집안을 비닐봉지로 덮어 놓으니 홈니스들 탠트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서 약에 찌든 사람들이 엉켜서 살았을 때 그때도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력이 동원되었다.
다 지나간 이야기인 것을.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정성으로 수리하고 있지 않은가!
이곳에서 다시 삶을 시작할 가족에게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에슨에 남겨진 아이들도 바쁜 하루를 보냈다. 리멤버런스 데이(Rmemberance Day) 행사를 위해 퍼피꽃 도네이션을 다니던 딸아이가 친구의 카메리에 찍혔다. 엄마도 없는데 스스로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에서 해야 할 일들을 감당해 내는 아이들이 참 대견스럽다. 많이 컸네 우리 딸!
5 갤론 페인트를 또 한통 사 왔다. 스프레이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모든 벽과 천장에 페인트를 쏱아붙고 있는 느낌이다. 온 집안이 번쩍 거린다. 급한 마음에 마르지도 않고 덧칠을 해서 벽에 버블이 많이 생겼다. 긁어내고 한번 더 칠해야겠다는 신랑의 혼잣말을 듣고 말았다.
'제발... 그러지 말아 줘~'
분명 우리 집 사이즈 전체를 칠하고도 남을 만큼 견적을 받아서 구입해 온 페인트인데 거실 천장을 한번 훑고 지나가자 동이 나 버렸다. 페인트를 분사하니 우리의 머리도 옷도 안경도 모든 것에 하얗게 페인트가 내려앉았다.
페인트 분사기를 사용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손목의 스냅, 규칙적으로 움직여 줘야 하는 리듬감, 그리고 거리조절. 이 모든 것이 숙련되지 않으면 당연히 힘도 들고, 작업도 엉망이고, 무엇보다 재료(페인트)가 많이 소비된다. 우리는 우리 집 전체 스퀘어피트를 두 번 칠하고도 남을 만큼의 페인트를 소비하고도 아직도 모자란 페인트를 추가구입하러 나가야 했다.
"지금 이 정도도 아주 훌륭하지만 다음에 또 페인트 칠할 기회가 생기면 자네는 정말 전문가처럼 잘할 수 있을 거야! 아주 잘했어!"
아빠는 지친 신랑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빠가 계셔서 다행이다. 아빠의 칭찬과 격려에 위로를 받으며 우리는 내일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