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싸기 프로젝트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Day 61> 11월 21일


온라인으로 에어캐나다 티켓팅을 했다. 아빠의 좌석이 표시된 비행기 표를 보니 이젠 정말 가셔야 하는 이 상황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인천공항에서 밴쿠버 공항으로 또 그곳에서 에드먼튼으로 경유해서 오셔야 하는 길을 동생이 참 꼼꼼히도 챙겨드렸었다. 공항의 모든 길을 칼러로 깨끗이 프린트되어 아빠가 길을 잃지 않도록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당장 내일이 아빠가 떠나시는 날인데 난 아무런 준비도 해놓질 않았다. 솔직히 한국에 가본 지 너무나 오래돼서 어떻게 경유하셔야 하는지, 밴쿠버 공항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해 드릴 수가 없었다.

"올 때랑 반대로 가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말씀하셨지만 비행기를 경유해야 하는 상황은 영어를 잘하는 젊은 사람들도 안내판을 자세히 살펴야 하는 일이다. 뒤늦게 부랴부랴 유튜브와 블로그를 뒤적거리며 머릿속에 한국입국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아! 나도 한국에 가고 싶다.

엄사장님께서 귀하다는 차가버섯 가루를 들고 아침 일찍 들리셨다. 누님이 암투병하셨을 때 도움이 많이 되셨던 건강식품인데 엄마께도 도움이 되실 거라며 슬그머니 넣어두고 사라지셨다.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누구보다 서로 잘 알기에 우리는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점심 먹고 드라이브에 나섰다. 살짝 얼어붙은 고속도로가 겁이 나긴 했지만 멋진 겨울 풍경을 한 번이라도 더 보여드리고 싶었다. 우체국 파업으로 주문해 놓은 아빠의 겨울잠바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한국도 많이 쌀쌀해졌다는데 따뜻한 잠바도 없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시는 건 안될 말이다. 창밖의 멋진 풍경을 보고도 우리 둘은 예전보다 말이 없어졌다. 더 많은 아름다움을 이 소중한 순간을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담기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


에슨에서 눈치우시는 아빠

"내가 또 언제 이렇게 눈을 치워보겠니."

"눈 치우는 것도 은근히 재미있네!"

말씀만이라도 눈 치우는 게 재미있다고 해주시니 다행이다. 아빠는 벌써 5번 이상 나가서 눈을 치우셨다. 우리 집부터 시작해서 온 동네 인도를 다 치우시는 것 같다. 아빠가 치우시지 않으면 이 모든 일이 딸의 몫이라는 걸 잘 아시기에 눈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달려 나가신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재미있게 들었던 내용이 있었다. 비행기 체크인을 할 때 화물의 무게를 집에서부터 정확하게 측량해서 가져오는 사람들은 한국인 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웃어넘겼던 이야기였는데 오늘로 벌써 아빠의 가방을 몇 번이나 저울 위에 올려보았는지 모르겠다. 23킬로 큰 캐리어 3개는 족히 나올 것 같다. 그렇다고 물건을 빼자니 뺄 물건이 하나도 없는 것이 더 신기하기만 하다. 친구분들께 선물해 드리고 싶다고 준비하신 하신 치약과 꿀, 그리고 초콜릿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귀국선물 검색결과 메이플시럽, 과자, 쿠키, 건강보조식품은 많이 봤지만 치약과 꿀이라니! 아마도 어르신들의 선물 선호품목이 우리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좋은 물건으로만 가득 담아 보내드리면 좋으련만, 가방을 몇 번이고 열어보아도 별것 없는 것 같아 손이 부끄럽다. 게다가 별것 없는 이 무거운 가방 들고 가시느라 고생하실 아빠를 생각하니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캐나다 가족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