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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Jul 21. 2023

슬기로운 집주인의 말말말

캐나다에서 집주인 아줌마 되기

집주인이 되기까지 나 또한 10년 가까이 세입자로서 여러 명의 집주인들을 만나왔었다. 그중에 절대 잊히지 않는 집주인아주머니 두 분이 계신다.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분은 첫 한국인 집주인 이셨다.

셋째를 임신하고 층간 소음 때문에 더 이상 아파트에서 살 수가 없어 우리는 이사를 결심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투배드 하우스 지하로 우리의 보금자리를 옮겼다. 비록 해는 잘 들지 않았지만 널찍한 방과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도 될 만큼 탁 트인 거실이 맘에 쏙 드는 곳이었다.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주인집 아저씨가 와이프와 사별하시고 혼자 살고 계신 아주 조용한 하우스였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너무 듣기 좋네.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아요." 라며 주인아저씨도 우리를 따뜻하게 반겨주셨다. 이렇게 4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7월에 막내 아이를 출산했다. 지하 랜트하우스에서 처음 맞이하는 우리 가족의 여름이었다. 나의 출산과 비슷한 시기에 주인아저씨께서 재혼을 하셨다. 우리는 새로운 안주인을 맞이한 것이다.

알콩달콩 신혼생활의 행복에 푹 빠진 주인아저씨는 새로운 안주인을 위해 잡초만 무성했던 정원을 다시 가꾸기 시작하셨고, 신혼부부는 아침저녁으로 텃밭에 물을 주며 아이 키우는 재미 대신 채소와 꽃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계신 듯했다.

출산 후 한 달쯤 지났을 때 아주머니의 호출로 신랑과 난 위층 거실에서 두 부부와 마주 앉았다.


아주머니 : 아기 이름이 뭐라고 했지? 수라고 했나? 

(우리 막내 이름은 왜자이다. '수')


나 : 네. 수 에요.


아주머니 : 혹시 물 수(水) 쓰나?


나 : 네?


아주머니 : 아니, 아기 이름이 물 수인가.... 이번달 수도세가 너무 많이 나왔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네. 아무래도 수도세를 더 납부해줘야 할 것 같아.


'아주머니께서 아침저녁으로 넓은 텃밭에 물을 많이 주신 것도 생각하셔야죠.'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서로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 원하시는 금액만큼 수도세를 드렸다.

기왕 같은 말이라도,

'신생아가 태어나서 물 쓰는 일이 많아졌지? 우리도 예상하고는 있었는데 생각보다 수도세가 많이 나와서 상의 좀 하려고 불렀어.'라고 했다면 비록 집주인아줌마가 쓰신 물이 더 많더라도 이해하고 수도세를 흔쾌히 드렸을 것 같다.

집 없는 서러움을 처음 느꼈던 순간임과 동시에 갓 태어난 우리 아기까지 모욕을 당한 느낌이었던 그때가 잊혀지지가 않는다.

 



두 번째로 생각나는 집주인아주머니는 인디아에서 온 이민자였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부터 우리에게 큰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렇게 이야기를 꺼냈다.

"난 한국사람 너무 좋아해. 성실하고 집도 깨끗하게 사용하고. 아이들 낚서 하고 이런 거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 어차피 이사 나가면 페인트 다시 칠할 거고, 아이들이 벽에 낙서한 거쯤은 쉽게 지울 수 있어."

랜트계약서를 마무리하는 날에는 아주 쿨하게 이렇게 한마디 덧붙였다.

"집에 특별히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나도 특별한 일 아니면 굳이 연락 안 할 테니까"

전적으로 우리를 믿는다는 이 한마디가 2년 넘게 랜트를 살면서 진심으로 내 집처럼 우리의 공간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었다.

언젠가 잘 울리지도 않는 전화벨이 울렸다. 집주인아주머니였다.

예고 없는 집주인의 전화로 인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무슨 일로 전화 주신 거지? 혹시 이사 나가라는 이야기인가? 렌트비를 올려달라고 전화하신 건가?' 온갖 나쁘고 불길한 생각이 팝콘처럼 팝팝 떠올랐다.


아주머니 : 내가 10분 뒤면 도착할 것 같아. 집에 있지? 집에는 들어가지는 않을 거고 잠깐 문만 열어줘.


나 : 아... 오케이...


10분 뒤 아주머니가 벨을 눌렀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라고 했더니...


아주머니 : 딸 이름이 뭐였더라? 내가 기억이 안 나네. 미안. 아이가 좋아했으면 좋겠네. 그럼 나 간다.


귀여운 테디베어 인형 하나를 내 손에 쥐어 주고는 손을 흔들며 가버렸다. 방금 산타 할머니가 다녀가신 건가? 어안이 벙벙하여 뭐라고 대꾸할 틈도 없이 주인아주머니는 총총히 바쁜 걸음을 더 서둘러 내리딧듯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곰인형을 보고 우리를 생각해 줬다는 사실도, 생각은 생각으로 멈출 수도 있었을 텐데 일부러 인형을 사서 아이에게 주고 간 것도, 게다가 집까지 와서 우리가 얼마나 집을 잘 관리하며 살고 있는지 살펴보지도 않고 문밖에서 그냥 돌아간 것도 모두가 따뜻한 관심과 배려로 내 마음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어떤 말로 세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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